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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비는 우리 몸을 살리는 보약

루스드라 2021. 11. 14. 12:31

(환경 수필)

퇴비는 우리 몸을 살리는 보약

이성교

  지금도 농촌에서는 때를 따라 쓰레기를 태우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집과 담을 사이에 두고 사는 이웃집에서도 가끔 연기를 피운다. 그때마다 그 연기가 우리 집 담을 넘어 집안을 한 바퀴 돌아 콧속을 거쳐 사라진다. 때로는 휘몰아치는 바람에 떠밀려 온 매캐한 연기가 안구 청소를 해주기도 한다.

  쓰레기는 태우는 종류에 따라 연기의 색깔과 타는 냄새가 다르다. 가을에 낙엽을 쓸며 비질하는 소리가 듣기에 좋은 만큼이나 낙엽 태우는 냄새에는 낭만이 서려 있어 싫지 않다. 또한 농작물 부산물을 태우는 냄새는 어릴 적 동심을 일깨운다. 그래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운을 느끼며 기분이 좋아진다. 아마 어린 시절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맡았던 냄새에 익숙한 추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닐류 등 화학성분이 있는 쓰레기는 연기의 색깔부터 다르고 냄새도 참 역겹다.

공기의 오염에 민감한 아내는 상당한 거리에서 태우는 냄새에도 머리가 아프다고 느낀다. 그래서 자신의 상태에 따라 환경 오염 물질을 가늠하게 된다. 쓰레기를 분리하여 처리하는 일에 철저한 것도 이 때문이다.

  7년 전 시골집으로 이사를 했을 때 아내가 가장 먼저 설치한 것이 야외 아궁이였다. 나는 그런 아내를 보면서 어린 시절 농작물 부산물을 땔감으로 썼던 환경에서 자란 기억의 회상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염된 공기에 민감한 체질이라 그동안의 경험이 습관화된 반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는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도 매우 조심스럽게 한다. 주로 이웃집 사람들이 활동을 시작하기 전 새벽이나 일이 끝나고 방으로 들어가는 저녁 시간을 이용한다. 그리고 바람이 없는 날을 택한다. 그래야 연기가 이웃으로 번지는 피해를 최소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와 땐 다음의 뒤처리 또한 유별나다.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는 꼭 두 가지 이상의 일감을 모아서 하는데 그것도 순서가 있다. 먼저 센 불이 필요한 재료를 끓이거나 삶아낸 다음 남은 약한 불로도 가능한 것은 나중에 한다.

  불을 지피고 남은 재는 땔감의 종류에 따라 각각 다르게 처리한다. 숯불에는 생선을 굽거나 고구마를 넣어 군고구마를 만든다. 그리고 남은 숯불은 물을 부어 불을 끈 다음 잘 말려 숯으로 보관한다. 손주들이 내려오면 오염되지 않은 숯으로 고기를 굽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재는 다음번에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까지 그대로 둔다. 그렇게 불이 완전히 꺼진 재는 필요한 작물에 뿌리거나 음식물 쓰레기와 섞어서 보관했다가 퇴비를 만들 때 함께 넣는다.

  첫해에는 텃밭에 작물이 많지 않아서 농작물 부산물과 낙엽까지 땔감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이듬해부터는 집안 곳곳과 텃밭에서 나오는 풀과 부산물 중에는 땔감으로 쓸 수 없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러자 아내는 딱딱하여 썩지 않을 것만 골라내고 남은 것들을 큰 비닐에 담아 구석에 쌓아두었다. 퇴비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마땅히 대책이 떠오르지를 않아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던 중에 농업기술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발효 미생물을 무료로 공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매사 적극적인 아내는 직접 농업기술센터를 찾아가서 그 효능과 활용 방법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그런 후에라야 비로소 퇴비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나도 쌓여가는 쓰레기를 볼 때마다 어린 시절 보았던 마당 구석진 곳의 두엄자리를 떠올리고 있었던 중이라 그렇게 하기로 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보급하는 발효 미생물은 유산균, 고초균, 효모, 광합성균, 클로렐라균 등 다섯 종류다. 농업경영체 등록이 되어 있는 300평 이상의 경작지가 있는 농가는 주 단위로 1회씩 가져다 쓸 수 있다. 우리는 대략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져온다. 아내가 모아놓은 부산물을 처리해야 할 만큼 쌓이면 가져오기 때문이다.

  미생물은 정해진 비율에 따라 물에 섞어서 농작물 부산물의 상태에 따라 켜켜이 쌓으며 뿌린다. 그리고 비닐과 장판으로 덮어둔다. 그것은 미생물 발효를 돕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웃집에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면 어린 시절에 야외에 쌓아 둔 두엄에서 나는 역겨운 냄새와 썩은 물이 나오지 않는다.

  덮어 놓은 퇴비는 다음번에 모아 둔 부산물을 퇴비장에 쌓을 즈음이면 절반 정도 하얗게 발효된 퇴비가 된다. 그 정도면 냄새가 전혀 나지를 않고 고소한 냄새가 난다. 그 정도 발효가 되면 한쪽에 쌓아둔 완전히 발효된 완숙 퇴비를 포대에 담고 그 자리에 절반쯤 발효된 퇴비를 뒤집어서 옮긴다. 그리고 빈자리에는 새로운 부산물을 쌓으며 미생물을 뿌린다. 가끔 깻묵을 넣기도 하는데 그 효능은 화학 비료에 비길 수 없을 만큼 탁월하다.

  나는 두엄더미를 쌓을 때마다 퇴비를 장려했던 어린 시절의 일이 떠오른다. 그 시절에는 범국가적으로 퇴비증산 운동을 벌였다. 마을 앞 창고 담벼락에는 퇴비는 보약, 금비는 양약이라는 표어를 써 놓고 퇴비증산을 장려했다. 그리고 면사무소에서는 이장님을 통해 땅심을 키우는 데는 금비 즉 화학 비료보다는 퇴비가 좋다고 주민들을 계도 했다.

  매년 면 단위로 풀베기 대회를 열었다. 마을별 선수를 뽑아 일정한 시간을 주고 풀을 베어서 저울로 달아 순위를 정했다. 그리고 순위에 든 팀에게는 상금을 주고 참가자 전원에게는 낫, 쇠스랑 등 농사에 필요한 농구를 참가상으로 주었다. 풀베기 대회는 대부분 면내에서 유지로 행세하던 사람들이 상품을 걸고 대회를 열어 퇴비 만들 풀을 모으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일에 불평하는 사람이 없이 즐겁게 참여했다.

  당시에는 면 단위의 특별한 행사가 없던 때라 풀베기 대회는 면민들의 축제였다. 주최하는 사람이나 참여자 모두가 하루를 즐기는 기분 좋은 날이다. 그래서 선수가 아니라도 함께 가서 응원하면서 주최 측에서 준비해 둔 막걸리를 마시며 즐겁게 놀았다.

  풀베기 대회가 있는 날 땅거미가 내리는 시간이면 동네 어귀가 시끌벅적했다.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은 순위와는 상관없이 모두가 어우러져 노래를 부르며 돌아왔다. 그 소리를 들은 가족들은 마중을 나와 그들을 맞이하여 함께 기쁨을 나누며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또한 그 시절 초등학교 여름 방학 과제 중에는 마른풀 한 단이 필수 과제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여름 방학의 기쁨보다 풀베기 과제가 늘 걱정이었다. 체구가 왜소한 나는 개학하는 날 십 리나 먼 학교까지 풀을 가지고 가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토록 퇴비증산을 강조하던 때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그때부터 흙에는 퇴비가 제일 좋다고 믿었다. 그리고 화학 비료는 땅을 황폐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나는 텃밭에 화학 비료는 쓰지 않고 퇴비만으로 농작물을 키운다. 그것이 땅심을 키우고 농작물의 오염을 막는 일이며 마침내는 내 몸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지로 이사 온 첫해에는 딱딱해서 땅을 파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리고 둘째 해 봄에는 땅을 파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텃밭을 가꾸는 일이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땅과 작물에도 미생물을 뿌렸다. 그 결과 해를 거듭할수록 지렁이가 토해낸 흙이 군데군데 쌓이기 시작하면서 흙이 보슬보슬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삽이나 쇠스랑으로 땅을 긁으면서 씨앗을 넣을 정도로 흙이 부드럽다.

  퇴비를 만들어 쓴 후 적지만 상당한 보람을 느끼고 있다. 먼저 생활 쓰레기를 거의 버리지 않는다. 재활용 쓰레기 외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10L 쓰레기봉투를 내어놓는다. 그리고 화학 비료는 물론 퇴비를 사는데 드는 지출을 줄일 수 있어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얻는 편이다. 그중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은 흙에 살면서 자율신경 이상으로 고생하던 아내가 건강을 회복한 것이다.

  좋은 퇴비를 사용한 흙에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그 좋은 향기가 농작물에 스며들어 건강한 먹거리를 만든다. 농작물이 주인의 발걸음을 따라 자라듯이 좋은 흙은 우리 몸을 살린다. 땅은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에게 심은 대로 거둔다.’는 하나님의 진리를 일깨워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