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방/오늘의 말씀

바울의 칠 종목의 기도

루스드라 2025. 1. 28. 06:45

 

<골로새서 1장 9-12절>
9.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0.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12.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위해서 힘써 기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골로새 교회의 상황을 듣던 날부터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고 구한다고 했으니 그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하고 진실한지 알게 하는 대목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유명한 설교 중 “나의 오종목의 기도”라는 설교가 있지만 오늘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위해서 칠종목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첫 번째 기도 :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소서
9절 하반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기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내 뜻대로, 인간의 뜻대로 행하다 실수하고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심을 받을 때에 성도의 삶은 온전해집니다. 
 
두 번째 기도 : 범사에 기쁘시게 하게 하소서
10절 상반절에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조차도 요한복음 8:29에서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은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라고 했으니 성도의 행 할바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기도 :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소서
10절 중반에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열매맺는 삶은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2에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에서 무화과를 찾으시고, 또한 우리의 삶에서 선한 열매를 찾으시는 것이죠. 그런데 이 열매는 단순히 삶의 결과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일의 열매를 말하는 것입니다.
선한 일은 무엇일까요? 앞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입니다. 전도하는 일, 선교하는 일, 구제하는 일, 이웃을 섬기는 일 등이 모두 선한 일입니다.
이런 선한 일은 우리가 먼저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빌립보서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했죠.
또한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먼저 선한 일을 시작하실뿐더러 성도들이 선한 일, 착한 일을 힘쓸 때 능력을 주십니다. 고린도후서 9:8을 보면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서 시작된 착한 일이 넘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넘치게 부어주신다는 것이죠.
 
네 번째 기도 :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소서
10절 하반절에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란 다른 말로 진리를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안다는 말도 되지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을 알아간다는 뜻입니다.
특히나 바울은 여기서 ‘자라게 하소서’라는 표현으로 마치 농작물이 자라듯이, 열매가 자라듯이 성장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는 좀더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에베소서 4:13-15입니다.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여기서도 바울은 자란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 자라나야할 기준치가 바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야 한다고 했스니다.
 
다섯 번째 기도 :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소서   
11절 상반절에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힘있고 능력있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기도하는 것은 세상적인 지식과 경험 속에서 나오는 능력이 아닙니다. 오직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나오는 능력입니다. 그 힘이 뭡니까? 위로부터 오는 힘이요, 성령의 힘이요, 복음의 능력이요, 말씀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이 골로새 교인들의 삶속에서 능력으로 나타나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여섯 번째 기도 :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소서 
11절 하반절에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바울 당시 초대교회의 상황 속에서 믿음의 삶을 산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외적으로는 환란과 핍박을 이겨야 하고 내적으로는 이단사설에 맞서야 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견디고 오래 참아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견딤과 오래 참음은 억지로 인상쓰면서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겨우 겨우 버텨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기도는 기쁨으로 견디고 기쁨으로 오래 참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혹은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는 등등의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만 사실 기쁨으로 견디고 인내한다는 것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앞서 말한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한 삶을 살기에 오히려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8:35-37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일곱 번째 기도 :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하소서
12절에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마지막 기도는 감사하게 하시기를 기도하는데, 그 감사의 조건이 ‘빛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성도의 기업이 무엇입니까? 곧 천국의 분깃이요, 영생을 얻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최종 종착지는 역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성도의 기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의 칠종목의 기도를 생각하면서 오늘 나의 기도제목은 무엇인지 돌아보고 칠종목이 아니라 칠십종목이라도 들어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