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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22) 씨알 좋이 온곱절

루스드라 2022. 1. 13. 11:10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22) 씨알 좋이 온곱절

김종길 다석철학 연구자
입력 : 2022.01.13 07:30 수정 : 2022.01.13 10:08

늙은이(老子) 19월을 따진다. 말뜻 따지고 속말 따져서 말풀이 깊이 새긴다. 물에 불리듯 뜻을 불려야 풀어지고 그 속이 시나브로 알아진다. 모름이 깨지고 새뜻이 캐져야 알아진다. 알면 속알이 새뜻하다. 새롭고 산뜻하니 참 시원하다. 알음앓이로 알음 알아지니 알맞이(哲學) 커진다. 앎이 커져도 모름을 지켜야 늘 싱싱하다.

모름 불려 새뜻 푸는 하루하루 알맞이 키우는 삶!

조금 좀 안다고 아는 체하면 싫어진다. 거짓으로 그럴듯하게 꾸미는 꼴이다. 꾸밈에 맛들려 제 자랑 즐기고 제 꼴 뽐내면 아니꼽다. 마치 거룩한 듯 우쭐거리니 볼썽사납다. 앎을 꾸미고 거룩을 시늉 내 다스리면 씨알이 힘들다. 씨알 곱게 틔우지 못하고 마른다. 거룩한 척 끊고, 아는 척 버려야 씨알 좋음이 온곱절(百倍) 높아진다.

꾸밈에 맛들려 제 자랑 즐기고 제 꼴 뽐내면 아니꼽다. 마치 거룩한 듯 우쭐거리니 볼썽사납다. 닝겔, 부드러운 날개, 2021, 연필, 콜라주

어짊과 옳음도 마찬가지. 어진 척하고 옳은 척하면 씨알들 도망가고 흩어진다. 누가 꾸미고 시늉 내는 이들을 따르고 사랑할 것인가! 끊고 버리지 않으면 흩어진 씨알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저마다 남을 얕잡아보면서 뛰어 넘으려는 잔재주도 끊어야 한다. 저마다 저만 이롭자고 빼앗아 곳간 채우면 훔침질이 있을 뿐이다. 앎과 거룩 시늉 끊고 버리기, 어짊과 옳음 시늉 끊고 버리기, 잔재주와 이로움 끊고 버리기로 글월(文) 꾸러미(冊) 삼을 수 있을까? 그것만으로는 모자라리라.

앎·거룩, 어짊·옳음, 잔재주·이로움. 이 셋을 써서 글월 꾸러미 삼기는 모라자니 덧붙이는 말이 필요할 터. 하나는, 꾸미지 않고 수수한 제 흰 바탕(素)을 보는 일이다. 둘은, 켜거나 쪼개지 않아 본디대로 생긴 등걸(樸)을 제 속에 품는 일이다. 셋은, 제 잇속만 차리는 사사로움을 적게 하는 일이다. 사사(私)는 ‘나만 아는 나’이니 ‘나나’이다. 넷은, 가지고 누리고 탐하는 마음의 싶음(欲望)을 적게 하는 일이다.

이루거나 얻고자 기대하는 바람(希望)이 있으니,

흰 바탕을 보고 등걸을 품되 나나를 조금만 싶음도 조금만 이어라.

씨알 좋음이 온곱절로 높아야 꾸밈없고 수수한 바탈(本性) 눈이 떠진다. 등걸 품고 줏대 꿋꿋이 세워야 따름이 돌아오고 사랑이 돌아온다. 19월은 바탕 보고 등걸 품어 씨알 좋음이 온곱절로 높아지는 바람 모심이다. 바라고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으로 바탕을 보고 등걸을 품어야 하리.

아직 낮 열두 시. 여섯은 가는 길을 멈추고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작은 봉우리에 서자 해무리가 여섯 무리해로 나타나 동그란 무리해 테(幻日)를 둘렀다. 세큰긋(三太極)이 크게 도는 동그라미로 세상을 천천히 휘감아 돌았다. 그 빛이 환히 비추는 봉우리 한 가운데 둘러 앉아 다석의 늙은이 풀이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어린님 : (눈을 껌벅이며 읊조리다가) 윗줄은 아무리 보아도 알 수가 없네. 작은 글씨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사슴뿔 : 큰 글씨를 먼저 보세나. 그륵을 끊고, 내 앎을 버리면 씨알의 좋음이 온곱절일거고. 그런데 그륵을 끊고, 내 앎을 버리면 사이에 ‘다ㄹ’과 ‘ㄴ다ㄹ’을 넣었지. 그륵은 ‘거룩’을 풀어 쓴 말인데 ‘그르다’라는 뜻을 하나 더 더했다네. 그러니까 거룩과 그르다를 더해서 ‘그륵다’를 만든 것이지. 풀어 말하면 ‘내 거룩 그르다를 끊고’라는 말이니 속알 몸가짐이 그르다는 뜻이라네. 그 다음 ‘내 알 ㄴ다ㄹ ㅁ을 버리면’은 ‘내 앎 안다를 버리면’, ‘내 알은(앎) 닮음을 버리면’으로 읽는다네. 앎 안다는 말은 ‘아는 체’요, 앎 닮음은 ‘앎의 시늉’이라네. 그러니 올바르게 읽으면, 내 거룩 그름을 끊고 내 앎 시늉을 버리면 씨알의 좋음이 온곱절이라는 말이네. 허허 참, 이것 참!

사랑이 : 노자 늙은이는 거룩을 아꼈지. 거룩은 씨알이 모시고 키워야 할 바른 길과 속알의 참 삶이거든. 여기서 거룩을 끊으라는 것은 ‘내가 거룩하다’는 스스로의 자랑과 뽐냄을 끊으라는 것이야. 다석은 자랑과 뽐냄의 거룩은 글러먹었다는 거지. 앎도 그래. 모름을 지키는 앎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 ‘내가 다 안다’고 앎을 자랑하고 뽐내는 것이 골치야.

떠돌이 :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다가) 늘 그게 큰 문제야. 나랏일 맡아 벼슬아치가 되면 제 스스로 거룩하다 자랑하고 제 앎이 바르다고 뽐내지. 그러니 씨알 삶이 좋을 리 없어. 벼슬이 거룩이요, 벼슬이 앎이라는 따위는 거짓 허깨비야. 거룩한 척, 아는 척 해봐야 나라꼴만 우스워. 씨알도 그런 벼슬아치 좋아하지 않아.

어린님 : (글을 보고 빙긋이 웃는다.) 아하, 이제 이 글은 읽을 수 있겠어. 우리 어짊 닮음을 끊고 우리 옳 닮음을 버리면 씨알이 다시 따름과 사랑으로 돌아올 거라는 얘기. 그저 어질고 옳은 게 아니라 어짊 닮고 옳음 닮았으니 이것도 그런 척하는 꼴의 시늉이네.

사랑이 : 18월에서 ‘큰길 버리니 어짊 옳음 나’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어짊 옳음도 아니고 그걸 닮은 척 하는 꼴이니 참 어이가 없어.

떠돌이 : 그 따위 닮은 척의 시늉하는 꼴은 물론이고 어짊 옳음의 자랑과 뽐냄도 끊고 버려야 흩어진 씨알이 다시 따르지. 사랑으로 돌아오고 말이야.

사랑이 : 씨알도 저마다 남을 뛰어 넘으려는 잔꾀나 교묘한 재치를 끊어야 돼. 공교(工巧)를 끊으라는 말은 남을 깔보고 짓누르는 잔재주를 끊으라는 거야. 또 저마다 저만 이롭자고 남을 밀어내고 업신여기면 훔침질(盜賊)이 일어나지. 제 잇속만 밝아서 쓸몬(財貨)을 쌓고 쌓아도 담 높이고 저만 가둔 꼴이거든.

늙은이 : 그래서 거룩·앎, 어짊·옳음, 잔재주·이로움, 이 셋을 글로 써서 꾸러미 월(冊)을 만들어 길벼리(道紀) 삼기는 모자라지. 셋은 그저 벼릿줄 정도나 될까?

어린님 : 아하, 그래서 말을 덧붙였구나. 딸림 말이 필요하겠어. 바탕, 등걸, 나나, 싶음의 말뜻을 풀어 줘.

깨달이 : 바탕(素)은 희고 흰 빛이요, 아무런 꾸밈이 없고 수수하고 물들여지지 않은 비롯이야. 바탈태우의 불꽃이 바로 이 희고 흰 빛이지. 제나(自我)를 하얗게 불살라야 마음이 맑고 시원하게 비워져. 가벼워져. 이 환히 트여 맑은 마음 빛의 검(天/神)을 보아야 해. 보아 속알 밝으니 얼나가 솟아나지. 등걸(樸)은 본디 그대로 생긴 나무야. 켜지도 쪼개지도 않은 통나무. 늘 스스로 저절로 있는 그대로의 꼴이니 치우치지 않아.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아서 마음이 똑바르고 올바르니 참올(眞理) 꽃내음이 피어나지.

사슴뿔 : 바탕을 보고 등걸을 품에 안고 사는 삶이 씨알의 삶이어야 한다네. 그러려면 나만 아는 나를 조그맣게 해야 하지. 사사로움의 사사(私), 그 나나를 적게 하는 것이라네. 또 자꾸만 무언가를 하고 싶은 하고잡의 싶음도 조그맣게 해야 한다네. 조그맣게 조그맣게 더 더 줄이고 줄이는 바람을 늘 바라고 바라야 씨알 삶이 참올로 트인다네.

떠돌이 : 씨알의 삶만 그런 게 아니야. 다스리는 이, 다스림 받는 이, 너나 우리 모두 다 그 길을 따라야지. 삶은 늘 한 꼴 차림으로 치우치지 않는 고름이 있어야 돼. 오히려 덧붙인 딸림 말의 바탕 보고 등걸 품고 나나 조그맣게 싶음 조그맣게 줄이는 그 삶이 늘이어야 해.

어린님 : 좋다 좋아. 조그맣게 줄이는 삶이 늘이니 참 좋아. 늘을 늘리고 늘려서 끝없이 밑없이 둘레 없이 하루하루 오늘살이 해야지. 자, 그럼 19월도 우리말로 다시 새겨볼까.

■김종길은

다석철학 연구자다. 1995년 봄, 박영호 선생의 신문 연재 글에서 다석 류영모를 처음 만났는데, 그 날 그 자리에서 ‘몸맘얼’의 참 스승으로 모셨다. 다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민중신학과 우리 옛 사상, 근대 민족 종교사상, 인도철학, 서구철학을 좇았다.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뜨거운 한 솥 잡곡밥이다.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정양모, 김흡영, 박재순, 이정배, 심중식, 이기상, 김원호 님의 글과 말로 ‘정신줄’ 잡았고, 지금은 다석 스승이 쓰신 <다석일지>의 ‘늙은이’로 사상의 얼개를 그리는 중이다.

■닝겔은

그림책 작가다. 본명은 김종민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큰 기와집의 오래된 소원>, <소 찾는 아이>, <섬집 아기>, <워낭소리>, <출동 119! 우리가 간다>, <사탕이 녹을 때까지> 등을 작업했다. 시의 문장처럼 사유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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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2201130730001#csidx208e1e78c5020e8b4d07ca3e8aec7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