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마음을 강퍅하게(완악하게) 하는 자'는 주로 바로(애굽의 왕)와 하나님 모두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바로는 스스로 교만과 불순종으로 마음을 굳게 먹었고, 하나님은 그의 선택과 죄악의 성향을 내버려 두시거나 심판의 과정 속에서 그 결과를 허락하셨음을 의미합니다. [1, 2]
1. 바로 자신의 선택 (스스로 강퍅하게 함)
  • 출애굽기 초반의 재앙들(처음 다섯 번)에서 바로는 스스로 모세의 말을 거역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 자신의 권력과 소유욕, 교만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를 의도적으로 무시했습니다
2. 하나님의 강퍅하게 하심 (섭리적 허용과 심판)
  • 여섯 번째 재앙부터는 성경에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고 표현됩니다.
  • 이는 하나님이 선한 사람에게 악한 마음을 강제로 집어넣으신 것이 아닙니다.
  • 햇빛이 버터를 녹이기도 하고 진흙을 단단하게 굳게 만들듯,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경고가 오히려 회개하지 않는 바로의 악한 태도를 더욱 완고하게 드러내도록 방치하시고 공의로운 심판의 과정으로 진행하셨음을 뜻합니다.

[꽁트]

대푸른마을의 안동 양반 이병옥 성자

흰돌 이성교

 

햇살이 맑게 내려앉는 고요한 시골 대푸른마을에는 푸른 들녘만큼이나 마음 밭이 넓은 한 어른이 살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댁호에 따라 '안동 양반'이라 불렀습니다. 안동 양반은 늘 고요하고 온화한 눈빛으로 이웃들을 대하는 참으로 겸손한 분이셨습니다.

평화롭던 대푸른마을에 어느 날 먹구름 같은 소문이 돌았습니다. 마을 앞 푸른 들녘 건너편에 가축 분뇨로 퇴비를 만드는 큰 공장이 들어선다는 것이었습니다. 맑은 공기와 황금빛 논밭이 자랑이던 마을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우리 마을에 그런 악취 나는 공장이 웬 말이요!"

발칵 뒤집힌 마을 사람들은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군청 앞으로 달려가 목청껏 퇴비장 반대를 외쳤습니다. 공무원과 출퇴근을 같이하며 군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또한 다른 조는 공사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막아섰습니다. 구급차가 쉴 새 없이 드나들 만큼 팽팽한 긴장감이 현장과 마을을 짓눌렀습니다.

갈등이 길어지면서 마을 사람들은 그 원인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였습니다. 공장 예정지 부근의 논을 업자에게 팔았던 안동 양반이었습니다.

"당신이 논을 넘겨주어서 이런 공장이 들어서는 거 아니요!"

처음 한 사람이 안동 양반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마치 화풀이 대상을 찾기라도 했다는 듯이 하루아침에 돌변했습니다.

“당신이 무슨 염치로 이 자리에 나오는 거요. 당장 돌아가지 못해요?”

마을에서 마주쳐도 하나같이 원수 보듯 하며 인사를 외면하는 것은 기본이었습니다. 시위 현장에도 나오지 못하게 하고 쉬는 동안 간식을 먹을 때도 안동 양반은 철저히 따돌렸습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런 마을 사람들이 밉고 서운하여 시위 현장에는 얼씬도 하기 싫었을 텐데 안동 양반은 한결같았습니다.

오히려 죄인의 심정으로 먼저 다가가 허리를 숙여 인사했고, 매일 같이 시위 현장에 나가 찬바람을 맞으며 한쪽에서 자리를 지켰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간식을 주지 않아도 눈앞에서 모욕을 주어도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기도를 드리며 그 모든 매서운 눈총을 묵묵히 품어 안았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퇴비 공장 사업자에게 논을 팔아넘긴 또 다른 젊은이는 무슨 이유인지 마을 사람 그 누구도 눈조차 흘기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안동 양반은 그 사람을 걸고 넘어갈 생각은커녕 아무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주민들의 반대에 막힌 사업자는 결국 퇴비 공장 대신 미곡도정공장으로 계획을 바꾸었습니다. 그렇게 팽팽하던 줄다리기는 대푸른마을 사람들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안동 양반 병옥이 당신은 참으로 진정한 성자요.”

어느 날 이웃에 살던 사람이 마을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차마 편을 들지는 못 했지만 안쓰러웠다며 조심스럽게 진심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바람 난 아내가 새로운 남편 집으로 떠나는 날 말없이 아내의 물건을 지게에 지고 따라갔다는 이웃 도암면의 이세종 성자의 이야기가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뭐, 내가 잘못해서 마을 사람들을 화나게 했으니 당연히 감수해야지요.”

이웃의 진심 어린 위로에 안동 양반은 자기 생각이 짧았다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안동 양반은 이웃으로부터 이병옥 성자라는 호칭을 받았습니다.

한편 퇴비 공장 문제는 그렇게 끝이 났으나 마을 사람 모두에게는 아물지 않은 생채기가 남았습니다. 공장 허가에 따른 행정 절차에 동의했던 이들과 주민들 사이에는 진실 공방이 벌어졌고 급기야는 법적 문제로 번졌습니다. 그런 중에 마음의 문을 닫은 이들은 마을 외곽으로 떠나는 등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은 채 살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1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상처 입은 대지에도 다시 파란 새싹이 돋아나는 봄은 찾아오듯이 외지에서 살던 뜻있는 젊은이가 애향회 회장을 맡아 마을을 위한 큰 잔치를 계획하였습니다. 2026년 11월 14일에 전국 각지에서 살고 있는 죽청리의 향우들이 한자리에 모여 화합의 축제를 열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화해와 용서라는 목표를 내걸고 대푸른마을 축제추진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축제추진위원장을 맡은 이홍기 애향회장은 놀랍게도 과거 소송과 갈등으로 벽을 두고 지내던 이들과 손을 맞잡았습니다. 삼고초려의 마음으로 그들을 설득하여 축제 추진위원회 임원을 맡아 대동마을의 전통을 이을 꿈을 꾸고 있습니다.

거룩한 땅 대푸른마을에는 성자 안동 양반이 눈물과 기도로 심었던 용서와 화해의 꽃을 피우기 위해 탐스럽고 고운 꽃봉오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웃이 다시 어깨를 나란히 겯고 아름다운 가을 축제의 꽃을 피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경 구절 (예레미야애가 3: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1]
의미와 묵상
 
  • 기업(株式/產業이 아닌 繼業·분배받은 몫): 구약 시대 가나안 땅을 지파별로 나누어 유업으로 삼았던 것처럼, 성도에게 진정한 삶의 소유와 분배의 몫은 세상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 그 분 자신임을 뜻합니다. [1]
  • 고난 중의 소망: 예레미야 선지자는 나라가 망하고 고통이 극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것이며 유일한 소망임을 고백합니다. [1]
  • 기다림: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는 사람은 절망 중에도 잠잠히 주를 바라보고 기다리며, 주님은 그 영혼에게 선을 베푸십니다.

이 시는 화순문협 회원이 카톡에 올린 글을 보고 즉흥적으로 쓴 글을 제미나이의 도움으로 한시로 바꾸었습니다.

 

<한시의 5언 절구에 대한 해설>

한시에서 5언 4구(오언절구)란 한 구(줄)에 5글자(5언)씩 총 4개의 줄(4구)로 이루어진 짧은 형식의 한시를 말합니다. 이를 다른 말로 오언절구(五言絶句)라고 부릅니다. [1, 2]
****주요 특징
  • : 한 줄에 5개의 한자가 들어갑니다. 전체 시는 20자의 한자로 이루어집니다.
  • 줄 수 (4구): 전체 시가 4줄로 구성됩니다.
  • 기승전결(起承轉結): 4줄 안에서 시의 시작(기), 이어받음(승), 변화나 반전(전), 마무리(결)의 구조를 가집니다.
  • 압운(韻): 짝수 번째 줄의 마지막 글자에 같은 발음이나 비슷한 운(소리)을 맞추는 압운법을 지킵니다. [1, 2, 3,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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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는 신자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가장 최고의 방법은 판단하지 않고 경청하며, 그들의 의심을 신앙의 성장을 위한 과정으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유다서 1장 22절을 통해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의심의 수면 아래에 있는 상처와 고민을 돌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방법으로 긍휼을 베풀 수 있습니다.
🎧 판단 없이 들어주기
  • 안전한 공간 제공: 의심을 솔직하게 털어놓아도 정죄받거나 실망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합니다.
  • 경청에 집중: 성급하게 정답을 제시하거나 신앙의 부족을 지적하기보다, 그들이 왜 그런 의심을 하게 되었는지 마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 감정에 공감하고 정상화하기
  • 의심은 과정임을 인정: 의심이 신앙의 파산이 아니라, 더 깊은 진리를 찾아가는 건강한 과정(Struggle)일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 성경 속 인물들 상기: 세례 요한이나 도마처럼 위대한 신앙인들도 의심의 순간이 있었음을 나누며 위로합니다.
 
📖 함께 고민하며 동행하기
  • 정직한 태도: 나 역시 모든 질문에 완벽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인정하고, "나도 잘 모르겠지만 함께 찾아보자"라는 태도로 다가갑니다.
  • 강요 없는 격려: 성경 읽기나 기도를 억지로 강요하기보다, 그들의 속도에 맞추어 곁을 지켜주는 동반자가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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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라는 구절은 성경 시편 137편 3절의 일부입니다.
이 시편은 바빌론 유배 시절(바빌론 유수)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부른 슬픈 노래로, 구절의 전체 맥락과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 성경 구절 (시편 137:1~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시편 137:3)

  1. 우리가 바빌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라
💡 구절의 배경과 의미
이 구절에 대해 더 자세한 신학적 해석이나 시편 137편 전체의 내용이 궁금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구절의 배경과 의미
  • 역사적 배경: 기원전 6세기, 유다 왕국이 바빌론에 멸망한 후 많은 유대인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 슬픔과 조롱: 바빌론의 정복자들은 포로가 된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예루살렘(시온)에서 부르던 신성한 종교적 노래를 불러보라며 흥을 돋우기 위한 유흥거리나 조롱거리로 노래를 청했습니다.
  • 슬픈 거부: 포로들은 나라를 잃은 극심한 슬픔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룩한 노래를 이방 땅에서 조롱거리로 부를 수 없다며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어두고 슬프게 울었습니다.
 

 

새찬송가 302장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은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신뢰하고, 안전한 해안가(인간의 생각)를 떠나 믿음의 깊은 바다로 나아가라는 강력한 영적 도전을 담은 찬송입니다. 각 절의 영적 의미를 요약해 드립니다.
각 절별 영적 해석
  • 1절: 은혜의 깊이에 대한 선포와 초대
    • 의미: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해 바다보다 넓고 깊습니다.
    • 메시지: 안주하던 삶의 '닻줄'을 끊고, 온전한 믿음이 필요한 깊은 곳으로 과감히 나아가라는 초대입니다.
  • 2절: 영적 안주함에 대한 책망
    • 의미: 많은 신앙인이 은혜의 표면(바닷가)에만 머물며 구경꾼처럼 살아갑니다.
    • 메시지: 겉에서 밀려오는 파도만 보지 말고, 그 속에 감추어진 깊고 풍성한 은혜의 세계를 직접 경험하라는 촉구입니다.
  • 3절: 두려움 때문에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
    • 의미: 신앙의 모험을 하려다가도 눈앞의 작은 실련이나 문제(찰싹거리는 작은 파도)를 보고 마음이 약해져 포기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지적합니다.
    • 메시지: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더 큰 은혜를 만날 수 있습니다.
  • 4절: 결단과 행동의 촉구
    • 의미: 지체하지 말고 '지금 곧' 노를 저어 믿음의 망망대해로 나아가라는 명령조의 권고입니다.
    • 메시지: 은혜는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순종을 통해 적극적으로 나아갈 때 누릴 수 있습니다.
  • 후렴: 온전한 헌신과 자유
    • 의미: 나를 보호해 주던 안전한 '언덕(세상적 의지)'을 떠나, 온전히 예수님의 은혜에만 자신을 맡길 때 진정한 영적 자유와 기쁨을 마음껏 누리게 됩니다.

핵심 메시지 3가지
  • 닻줄을 끄르라: 과거의 상처, 고정관념, 세상적인 안전장치를 끊어내야 합니다.
  • 작은 파도를 두려워 말라: 눈앞의 사소한 장애물 때문에 영적인 전진을 멈추지 마십시오.
  • 깊은 데로 가라: 피상적인 신앙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과의 깊은 친밀함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 찬송의 작사자(앨버트 심슨 목사)의 신앙 배경이나 관련 성경 구절(예: 에스겔 47장 생명수 환상, 누가복음 5장 깊은 데로 가라)
 
 
 
 
 
 
 
 
 

<오늘의 말씀>사무엘하 23:11-12

11.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사기가 올라 거기 녹두나무가 가득한 한쪽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되
12. 그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들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

 

<해설> 성경 말씀에 나오는 ‘녹두나무가 가득한 밭(또는 팥 밭)’은 구약성경 사무엘하 23장 11~12절에 기록된 다윗의 용사 삼마(Shammah)의 전투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1, 2]

이 구절이 가지는 역사적·영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본문의 배경과 사건 개요

장소: 블레셋 군대가 집결한 ‘레히’ 지역입니다. 이곳은 과거 사사 삼손이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승리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상황: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의 농작물(녹두/팥)을 약탈하고 공격하기 위해 쳐들어왔을 때,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군사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

행동: 그러나 다윗의 용사 중 한 사람인 하랄 사람 삼마는 홀로 그 밭 가운데 서서 적들의 진격을 막아내고 블레셋 사람들을 쳤으며,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큰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2. ‘녹두나무밭(팥 밭)’의 상징적 의미
  • 사명이 담긴 일상의 자리 (나의 밭)
    • 녹두밭은 대단한 왕궁이나 거대한 성전이 아니라, 보잘것없어 보이는 평범한 농작물의 터전입니다.
    • 그러나 이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업의 터이자 이스라엘의 생명이 유지되는 소중한 곳이었습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이 각자에게 맡겨주신 가정, 직장, 교회, 그리고 일상의 사명 자리를 상징합니다. [1, 2]
  • 사탄의 약탈과 위협
    • 블레셋 군대가 하필 먹을 것과 결실이 있는 밭을 노려 침략했듯, 악한 세력은 성도들의 평화와 믿음의 결실, 일상의 은혜를 빼앗으려 호시탐탐 위협을 가해옵니다. [1]
  • 홀로 서는 믿음과 영적 전쟁
    • 모두가 두려워 도망칠 때 삼마는 물러서지 않고 그 자리를 굳게 지켰습니다. 이는 거대한 세상의 압력이나 두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영적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 거룩한 용기를 뜻합니다. [1, 2]
  • 하나님의 주도적 구원
    • 성경은 삼마가 용맹을 떨친 후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라고 기록합니다. 싸움의 승패는 숫자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비로소 참된 승리가 완성된다는 구원론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 2]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전 10:10)

작성자김종민|작성시간26.01.20|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전 10:10)

 

누구나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들에게는 성공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스티븐 K. 스코트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7가지 습관을 가지고 행동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7가지 습관을 살펴보면, “첫째, 주도적이 되라. 둘째, 목표를 갖고 행동하라. 셋째, 소중한 것부터 먼저 행하라. 넷째, 상호의 이익을 추구하라. 다섯째, 경청한 다음에 이해시켜라. 여섯째, 시너지를 활용하라. 일곱째, 심신을 단련하라.”입니다.

7가지 습관대로 산다고, 반드시 성공합니까?

 

10절 말씀입니다.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나무나 돌을 깎을 때, 무딘 연장으로 하면, 힘만 들뿐입니다. 능률이 오르지 않습니다.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무딘 연장의 날을 갈 때와는 엄청난 차이가 발생합니다.

연장을 갈지 않으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힘이 듭니다. 심지어는 목표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을 하기에 앞서, 무딘 연장의 날을 갈아야 합니다.

 

연장을 간다는 말은 곧 원칙을 세운다는 말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연장을 잘 가는 사람들입니다.

실패하는 사람은 연장을 갈지 않고, 덤벼드는 사람들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그들만의 원칙이 습관화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일찍 일어납니다. 그들은 남의 말을 경청합니다. 그들은 실패하여도 낙담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시 일어섭니다.

그렇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습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공을 원하기에 앞서, 성공하는 길이 있음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인의 성공은 그 길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얻은 성공이 진짜 성공입니다. 예수님 밖에서는 아무리 거창한 업적을 이루어도, 성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성공 원칙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잘되기를 원하고 계시며, 우리들에게 잘될 수밖에 없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우리의 방법대로 살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먼저, 영혼이 잘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 범사가 잘되고, 마지막에 건강의 원칙을 따라, 복을 받아야 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도, 건강을 잃는다면, 다 잃는 것입니다. 건강하여도, 영혼의 천국이 없다면, 헛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잠깐의 성공에 목매지 말고, 영원한 성공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일을 할 때, 성공하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시 111:10)라고 말했습니다.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지각이 뛰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일을 할 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이 땅에서, 성공하려면, 그 무엇보다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 일이나, 교회 밖의 일이나, 우리는 매순간, 주님의 도우심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과 동행함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출처 : https://m.cafe.daum.net/minijm/9n5s/149?svc=AXZ

선한 양심의 타락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너희가 동산 안에 있는 모든 과일은 임의로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와가 어느 날 선악을 알려는 나무 앞에 서서 그 실과를 바라보고 있을 때 사단이 하와를 꼬드깁니다. 
이 장면에 대한 정확한 내용은 물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추정해 볼 수는 있습니다. 

하와가 선악을 알기는 나무 앞에 섰을 때 그 나무 열매는 봄즉도 하고 먹음직도 했습니다. 
그때 뱀이 유혹을 합니다. 
“네가 먹고 싶으냐? 먹어 봐!”
그러자 하와가 이렇게 답변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어. 그러므로, 내가 먹을 수 없어!”라고 하자, 뱀이 말합니다. 
“네가 그것을 먹어도 결코 죽지 않아! 하나님도 그것을 알고 계셔. 다만 하나님은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을 알고 먹지 말라 명한 거야!”

하와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 말씀보다, “결코 죽지 않는다”는 뱀의 말을 듣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합니다. 
이로부터 하나님과 인간은 등을 지게됩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보다, 사탄의 말을 더 옳다고 인정함으로서 하나님으로 부터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증거가 에덴에서의 추방이고, 창세기 6:3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신이 인간에게서 떠남으로서” 인간의 영적인 인지기능이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이 것이 바로 ’선한 양심‘이 ’악한 양심‘으로 타락하게 된 결과입니다.

타락한 후 최초로, ’악한 양심‘이 ’선한양심‘으로 방향전환을 이룬 사건이 바로 홍수사건입니다.
노아의 8식구가 약 100여년에 걸쳐 완성한 방주가, 물로인해 떠오르게 되자, 그때 하나님을 떠났던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서게 된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옳구나! 하나님이 죽으리라 하면 죽는 것이고. 살리라 하면 사는 것이구나!“라고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된 것입니다.
이를 가리켜 ”선한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감이라“ 한 것입니다.

”물로 홍수를 쓸어버린다“ 하신 말씀이 옳은 말씀이고, ”방주를 예비하면 살리라. 하시던 그 말씀이 바로 옳은 말씀이었다” 라고, 마음을 돌이키게 된 그 사건이 바로 세례이고,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증언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21절의 ’순에이데시스‘(συνείδησις)는 도덕적 양심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내적 감각을 가리키는데“, 신약성경은 보다 깊은 의미로, “하나님 앞에 선 존재적 자각.”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가 의도한 ‘양심’인 것입니다. 
단순히 옳고 그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상태를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선한”으로 표현된 ‘아가데스’(ἀγαθῆς)는 ‘윤리적 완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방향을 튼 ‘마음의 상태’를 강조한 것입니다.

또한 “찾아가는 것”이란, ‘에페로테마 에이스 테온’(ἐπερώτημα εἰς θεόν)은 ‘질문’, ‘청원’, 혹은 ‘응답’을 의미하는데, ‘에페로테마’(ἐπερώτημα)는 고대 헬라 법정에서 “관계의 확인”이나, “서약적 응답”을 나타내는 말이였지만, 여기서는 단순한 ‘청원’보다 더 깊은 뜻을 담아, “하나님께 마음이 돌이켜 나아가는 관계적 움직임”이란 뜻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리고 ‘에이스 테온’(εἰς θεόν)은 “하나님께로 들어가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단순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안으로 들어가는 역동적인 행위”를 표현합니다.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결국 세례란 죄를 씻어내는 물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결심을 표명하는 서약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는 양심의 전환을 드러내는 표징”이란 뜻입니다.

 

각주 

1) 그 당시는 오직 이성호목사 편 ‘성구대사전’이 유일했기에, 성구사전을 참조하고, 관주성경의 관주에 기록된 구절들을 찾아 노트에 적어가며 묵상해 왔던 것입니다. 

출처 : 당당뉴스(https://www.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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