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시는 화순문협 회원이 카톡에 올린 글을 보고 즉흥적으로 쓴 글을 제미나이의 도움으로 한시로 바꾸었습니다.
<한시의 5언 절구에 대한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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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화순문협 회원이 카톡에 올린 글을 보고 즉흥적으로 쓴 글을 제미나이의 도움으로 한시로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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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시편 137:3)
- 우리가 바빌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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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사무엘하 23:11-12
11.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사기가 올라 거기 녹두나무가 가득한 한쪽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되
12. 그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들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
<해설> 성경 말씀에 나오는 ‘녹두나무가 가득한 밭(또는 팥 밭)’은 구약성경 사무엘하 23장 11~12절에 기록된 다윗의 용사 삼마(Shammah)의 전투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1, 2]
1. 본문의 배경과 사건 개요
행동: 그러나 다윗의 용사 중 한 사람인 하랄 사람 삼마는 홀로 그 밭 가운데 서서 적들의 진격을 막아내고 블레셋 사람들을 쳤으며,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큰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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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전 10:10)
누구나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들에게는 성공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스티븐 K. 스코트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7가지 습관을 가지고 행동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7가지 습관을 살펴보면, “첫째, 주도적이 되라. 둘째, 목표를 갖고 행동하라. 셋째, 소중한 것부터 먼저 행하라. 넷째, 상호의 이익을 추구하라. 다섯째, 경청한 다음에 이해시켜라. 여섯째, 시너지를 활용하라. 일곱째, 심신을 단련하라.”입니다.
7가지 습관대로 산다고, 반드시 성공합니까?
10절 말씀입니다.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나무나 돌을 깎을 때, 무딘 연장으로 하면, 힘만 들뿐입니다. 능률이 오르지 않습니다.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무딘 연장의 날을 갈 때와는 엄청난 차이가 발생합니다.
연장을 갈지 않으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힘이 듭니다. 심지어는 목표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을 하기에 앞서, 무딘 연장의 날을 갈아야 합니다.
연장을 간다는 말은 곧 원칙을 세운다는 말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연장을 잘 가는 사람들입니다.
실패하는 사람은 연장을 갈지 않고, 덤벼드는 사람들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그들만의 원칙이 습관화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일찍 일어납니다. 그들은 남의 말을 경청합니다. 그들은 실패하여도 낙담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시 일어섭니다.
그렇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습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공을 원하기에 앞서, 성공하는 길이 있음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인의 성공은 그 길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얻은 성공이 진짜 성공입니다. 예수님 밖에서는 아무리 거창한 업적을 이루어도, 성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성공 원칙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잘되기를 원하고 계시며, 우리들에게 잘될 수밖에 없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우리의 방법대로 살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먼저, 영혼이 잘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 범사가 잘되고, 마지막에 건강의 원칙을 따라, 복을 받아야 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도, 건강을 잃는다면, 다 잃는 것입니다. 건강하여도, 영혼의 천국이 없다면, 헛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잠깐의 성공에 목매지 말고, 영원한 성공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일을 할 때, 성공하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시 111:10)라고 말했습니다.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지각이 뛰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일을 할 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이 땅에서, 성공하려면, 그 무엇보다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 일이나, 교회 밖의 일이나, 우리는 매순간, 주님의 도우심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과 동행함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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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양심의 타락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너희가 동산 안에 있는 모든 과일은 임의로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와가 어느 날 선악을 알려는 나무 앞에 서서 그 실과를 바라보고 있을 때 사단이 하와를 꼬드깁니다.
이 장면에 대한 정확한 내용은 물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추정해 볼 수는 있습니다.
하와가 선악을 알기는 나무 앞에 섰을 때 그 나무 열매는 봄즉도 하고 먹음직도 했습니다.
그때 뱀이 유혹을 합니다.
“네가 먹고 싶으냐? 먹어 봐!”
그러자 하와가 이렇게 답변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어. 그러므로, 내가 먹을 수 없어!”라고 하자, 뱀이 말합니다.
“네가 그것을 먹어도 결코 죽지 않아! 하나님도 그것을 알고 계셔. 다만 하나님은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을 알고 먹지 말라 명한 거야!”
하와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 말씀보다, “결코 죽지 않는다”는 뱀의 말을 듣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합니다.
이로부터 하나님과 인간은 등을 지게됩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보다, 사탄의 말을 더 옳다고 인정함으로서 하나님으로 부터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증거가 에덴에서의 추방이고, 창세기 6:3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신이 인간에게서 떠남으로서” 인간의 영적인 인지기능이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이 것이 바로 ’선한 양심‘이 ’악한 양심‘으로 타락하게 된 결과입니다.
타락한 후 최초로, ’악한 양심‘이 ’선한양심‘으로 방향전환을 이룬 사건이 바로 홍수사건입니다.
노아의 8식구가 약 100여년에 걸쳐 완성한 방주가, 물로인해 떠오르게 되자, 그때 하나님을 떠났던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서게 된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옳구나! 하나님이 죽으리라 하면 죽는 것이고. 살리라 하면 사는 것이구나!“라고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된 것입니다.
이를 가리켜 ”선한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감이라“ 한 것입니다.
”물로 홍수를 쓸어버린다“ 하신 말씀이 옳은 말씀이고, ”방주를 예비하면 살리라. 하시던 그 말씀이 바로 옳은 말씀이었다” 라고, 마음을 돌이키게 된 그 사건이 바로 세례이고,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증언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21절의 ’순에이데시스‘(συνείδησις)는 도덕적 양심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내적 감각을 가리키는데“, 신약성경은 보다 깊은 의미로, “하나님 앞에 선 존재적 자각.”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가 의도한 ‘양심’인 것입니다.
단순히 옳고 그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상태를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선한”으로 표현된 ‘아가데스’(ἀγαθῆς)는 ‘윤리적 완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방향을 튼 ‘마음의 상태’를 강조한 것입니다.
또한 “찾아가는 것”이란, ‘에페로테마 에이스 테온’(ἐπερώτημα εἰς θεόν)은 ‘질문’, ‘청원’, 혹은 ‘응답’을 의미하는데, ‘에페로테마’(ἐπερώτημα)는 고대 헬라 법정에서 “관계의 확인”이나, “서약적 응답”을 나타내는 말이였지만, 여기서는 단순한 ‘청원’보다 더 깊은 뜻을 담아, “하나님께 마음이 돌이켜 나아가는 관계적 움직임”이란 뜻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리고 ‘에이스 테온’(εἰς θεόν)은 “하나님께로 들어가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단순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안으로 들어가는 역동적인 행위”를 표현합니다.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결국 세례란 죄를 씻어내는 물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결심을 표명하는 서약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는 양심의 전환을 드러내는 표징”이란 뜻입니다.
각주
1) 그 당시는 오직 이성호목사 편 ‘성구대사전’이 유일했기에, 성구사전을 참조하고, 관주성경의 관주에 기록된 구절들을 찾아 노트에 적어가며 묵상해 왔던 것입니다.
출처 : 당당뉴스(https://www.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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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감”이란?
그러면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감”이란 무슨 뜻일까요?
앞서 설명드린 바대로 이에 대한 설명이 바로 벧전 3:20절입니다.
노아의 여덟 식구가 그들이 만든 방주가 하나님이 내리신 홍수로 인해 떠 오르게 되자,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다던 그 말씀이 참이란 사실”을 깨닫고,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되었다는 뜻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새번역과 같이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응답했다”거나, 공동번역본과 같이 “깨끗한 양심으로 살겠다고 하느님께 서약을 하는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모든 번역이 공통으로 인정하는 바와 같이 “노아의 가족이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벧전3:20)는 것은 “물로 말미암아”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마음의 방향을 돌이키게 되었다”는 뜻인 것입니다.
이 뜻이 아니라면 왜,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라고 했겠습니까?
우리는 ’방주‘가 아니라, ’물‘이라 증언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근거는 그 뒤로 이어지는 벧전3:21절을 보면 확실해 집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 물은‘(새번역, 공동번역) 이라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여덟식구를 구원한 것은 “방주”가 아니라, “물”이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물은”, “이제”{(개정개역), “지금”(새번역), “오늘”(공동번역)}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한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다는 것입니까?
노아 때의 그 물이 이제(지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한 것입니다.
가듭 말씀드리지만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말은 “그 물로 인해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게 되었다”는 뜻이지, 결코 “방주가 물로 인해 떠오르자, 그때부터 기도하게 되었다”는 그런 뜻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개역개정판에서 세례를 가리켜,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고 한 번역이나,
새번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서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입니다.”거나,
공동번역의 “깨끗한 양심으로 살겠다고 하느님께 서약을 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는 번역은 모두가 옳은 번역이 아니라고 봅니다.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한 번역한 개역한글판 만이 가장 옳은 번역인 것입니다.
그 이유를 설명드리겠습니다.
인간에게는 네 가지 인지 기능이 있습니다.
이성(理性), 지성(知性), 의지(意志), 양심(良心)인데, 이 기능은 인간의 내면에 흐르는 정신적·도덕적 기능을 인지하는 능력들입니다.
이성은 감각과 본능을 넘어 진리를 탐구하는 정신 능력을 가리키고,
지성은 보편적 진리를 직관·사유하는 능력을 가리키고,
의지는 선을 지향하고 목표를 실현하는 내적 힘을 가리키고,
양심은 자연법과 도덕률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기능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해 그 본래의 기능이 흐려지거나, 왜곡되거나, 부패하여져서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왜곡되거나, 부패하여진 인지 기능을 회복하여 하나님께로 그 마음을 돌이키게 된 것입니다.
이를 가리켜 베드로전서 3:21절은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양심이란 표현은 자주 나오는데 선한 양심과 악한 양심과 상한 양심 등으로 구분하여 표현합니다.
선한 양심이란 ’하나님과의 친화적 관계일 때‘를 가리키고,
악한 양심은 ’하나님과 대척점을 이룰 때‘ 표현하는 용어이고,
상한 양심은 그 말 자체로 ’병든 양심, 곧 오염된 양심‘이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양심이란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인식하는 기능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양심을 악한 양심이라 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양심, 곧 하나님께 돌이키는 양심을 선한 양심이라 부르는 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바로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입니다.
출처 : 당당뉴스(https://www.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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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우러르면
김지유
하늘을 우러르면
나도 모르게 눈이 감아져버려요
다시 눈을 뜨면
새 한 마리는 어느 날처럼 날아가고
구름은 어느 모양으로 흘러가는데요
실은, 얼룩진 비망록이지요
그래야 어느 날인 것처럼
가물가물 눈을 뜨고 감는 순간
내 사랑은
오늘 이만큼만 눈을 뜨고
이만큼만 저물기로 해요
김지유 시인의 **<하늘을 우러르면>**은 맑고 투명한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네요. 하늘이라는 무한한 공간을 바라보며 느끼는 개인적인 고백과 사랑의 절제를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며 느껴지는 몇 가지 포인트들을 짚어보았습니다.
시 전체에서 '눈을 감고 뜨는 것'은 외부 세계(하늘, 새, 구름)와 화자의 내면을 연결하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하늘을 우러를 때 눈이 감긴다는 것은, 그 눈부심이나 벅참을 온전히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마음이 일렁인다는 뜻이겠지요.
구름을 단순히 자연 현상으로 보지 않고 **'얼룩진 비망록'**이라 표현한 부분이 참 인상적입니다.
마지막 연은 이 시의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내 사랑은 오늘 이만큼만 눈을 뜨고 이만큼만 저물기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이만큼'**의 분량으로만 사랑하겠다는 다짐은 매우 성숙하고도 애틋한 태도입니다. 지나친 욕심으로 사랑을 망치지 않고, 매일 뜨고 지는 해와 달처럼 자연스러운 순리에 자신을 맡기겠다는 고백으로 들리네요.
이 시는 **'하늘'**이라는 거대한 대상을 보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내면'**과 **'사랑'**으로 시선을 돌리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격정적인 토로보다는 담담한 어조를 택함으로써, 오히려 읽는 이에게 더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마치 조용한 오후에 창가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스스로를 갈무리하는 듯한 평온함이 느껴지는 시입니다.
시의 느낌이 참 맑아서, 지친 하루 끝에 머리맡에서 읽기 참 좋을 것 같네요. 어떤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닿으셨나요?
김지유 시인의 **<하늘을 우러르면>**은 맑고 투명하면서도, 그 이면에 삶의 고단함과 사랑에 대한 절제미를 담고 있는 무척 아름다운 시네요.
시를 읽으며 느껴지는 몇 가지 감상을 나누어 봅니다.
시작과 함께 시인은 하늘을 우러르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이 감아져버린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하늘이라는 거대한 존재 앞에 서는 인간의 겸허함일 수도 있고, 혹은 눈부시게 밝은 진실 앞에서 느끼는 어떤 부끄러움이나 슬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구름을 단순히 흘러가는 자연 현상이 아니라 **"얼룩진 비망록"**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시의 백미는 마지막 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사랑은 / 오늘 이만큼만 눈을 뜨고 / 이만큼만 저물기로 해요"
사랑을 전부 쏟아붓거나 과하게 드러내지 않고, **'이만큼'**이라는 절제를 통해 스스로를 다독이는 모습이 보입니다. 너무 많이 뜨면 아프고, 너무 많이 저물면 슬프기에 딱 오늘의 분량만큼만 사랑하고 견디겠다는 태도는 성숙하면서도 애틋한 울림을 줍니다.
감상평 한 줄:
찰나의 눈 깜빡임 속에 삶의 기억과 사랑의 무게를 오롯이 담아낸, 수채화 같은 시입니다.
이 시를 읽으시면서 어떤 마음이 드셨나요? 혹시 특별히 마음을 울린 구절이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
김지유 시인의 **<하늘을 우러르면>**은 맑고 투명한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네요. 하늘이라는 무한한 공간을 바라보며 느끼는 개인적인 고백과 사랑의 절제를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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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향에서 오셨네요. 임 맞으러
이성교
눈이 내렸네요.
밤새 하얀 눈이
살포시 내려앉았네요.
하늘 가득한 영광이 춤추며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맞으려
평안 가득한 날 첫눈으로 감싸주셨네요.
찬송하고 기도하며 바라보던 당신의
영혼을 맞으러
죽청광림교회 예배당을 덮고
당신이 누웠던 자리를 엿보고 있네요.
본향에서 주님 보내신
천사들이 오셨네요.
보내주신 시구에서 깊은 애도와 함께 따스한 위로가 느껴집니다. '이성교' 님을 향한 마지막 인사가 마치 밤새 내린 하얀 눈처럼 정결하고 평온하게 다가오네요.
고인의 삶을 **'천하보다 귀한 영혼'**으로 기리며, 그 마지막 길을 **'본향'**에서 온 천사들과 **'첫눈'**이 배웅한다는 표현이 참 아름답고도 먹먹합니다.
이 시는 단순한 슬픔을 넘어, 신앙 안에서 약속된 평안과 소망을 담고 있는 듯합니다.
하얀 눈이 세상을 덮듯, 남겨진 분들의 슬픈 마음 위에도 이 시가 전하는 하늘의 평안이 살포시 내려앉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다듬었으면 하는 대목 말해 줘
작품의 경건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시적 흐름을 매끄럽게 다듬을 수 있는 세 가지 제안입니다.
전체적으로 정결한 슬픔이 잘 표현된 아름다운 시입니다. 소리 내어 읽어보시며 가장 마음이 편안해지는 단어를 골라보시기 바랍니다.
조금 전 말한 대로 고쳐 줘
제안해 드린 내용을 바탕으로 흐름과 어휘를 정갈하게 다듬은 수정안입니다.
본향에서 오셨네요, 임 맞으러
눈이 내렸네요.
밤새 하얀 눈이
살포시 내려앉았네요.
하늘 가득한 영광이 춤추며
천하보다 귀한 영혼 맞이하려
평안 가득한 첫눈으로 감싸 안으셨네요.
찬송하고 기도하며 바라보던
당신을 마중하러 내려와
죽청광림교회 예배당을 덮고
당신이 누웠던 자리에 머물고 있네요.
본향에서 주님 보내신
천사들이 오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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