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무리흰돌문학관

흰돌문학관/자료 방

시 쓸 때 피하면 좋은 언어들 8가지

루스드라 2023. 12. 1. 09:39

시 쓸 때 피하면 좋은 언어들 8가지

 

1

거칠게 나눠보면 

시를 이루는 두 개의 큰 축은 

‘언어’와 그 언어에 담긴 ‘상상력’입니다. 

정제된 언어에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상상력을 담으면, 그 상상력이 마침내 

우리의 삶을 ‘다른 곳’으로 인도해 줄 때 

우리는 그 시를 ‘좋은 시’라고 합니다. 

이런 시를 쓰는 일은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자신의 일평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인지도 모릅니다. 

시를 쓰면서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데 

이때 생각해야 할 것이 ‘언어’입니다. 

상상력은 자신이 체험하는 것들과 

자신이 접한 텍스트들에 더해 

오랜 명상과 숙련이 필요하고 

여기에 더해서 체화, 즉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 또한 필요합니다. 

단시간에 성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란 얘기죠. 

그에 비해서 언어의 단련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자신이 목표하는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게 또한 사실입니다. 

문예창작학과나 문화 센터 같은 곳에서 

교육하는 것들도 사실 대부분 

‘언어’에 관련된 것이지요.

2

‘언어’의 문제에 국한해서 말씀드리면 

무엇을 더하는 일보다는 

무엇을 빼는 일이 조금 더 쉽겠습니다. 

오늘은, 

‘시를 쓸 때 이것만은 피하자’, 

하는 것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시를 어렵게 생각하는 것만큼 어쩌면

시도 우리를 어렵게 생각할 겁니다. 

시가 어려워 하는 말들은 

어려운 말들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쓰는 말들일 겁니다.

그런 단어들을 생각해봤습니다.

3

1. 수없이 

우리는 '수없이', 라는 말을 정말 수없이 씁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어쩌면 

훨씬 더 많이 쓰고 있습니다. 

이런 문장.

"수없이 많은 밤들이 지나갔다"

빼도 됩니다. 

수없이를 수없이 쓰면 '수없이'가 안 됩니다. 

"많은 밤들이 지나갔다"라는 문장 안에 

‘수없이’가 이미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없이 불어오는 바람”,

어떤가요. 바람의 속성은

“수없이”, 어쩌면 거의 

무한대로 분다는 데 있겠습니다. 

“불어오는 바람”, 이렇게 써도 되겠지요. 

4

2. 자꾸만

마찬가지입니다. 

"자꾸만 많은 밤들이 지나갔다"

빼도 됩니다. 

‘자꾸만’을 자꾸만 쓰면 ‘자꾸만’이 안 됩니다. 

"많은 밤들이 지나갔다"라는 문장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가 싫어하고 어려워합니다.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자꾸만 죽고 아프고”,

이런 문장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 시대

많은 사람들이 아프고 또 죽습니다. 

자꾸만 아프고 자꾸만 죽습니다. 

시는,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대화이기 때문에

안 해도 되는 말들은 안 해도 됩니다.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죽고 아프고”, 

이렇게 쓰는 게 훨씬 더 깔끔하겠지요. 

언어는 습관입니다. 

일단 시를 쓸 때는 편하게 손이 가는대로 쓰고

고칠 때 이런 말들은 전부 다 삭제해 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고치다 보면 다음 시, 그 다음 시에서

자신이 고쳤던 말들은 안 쓰게 되고

그러한 경험이 모여서 습관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이런 정의가 또한 가능하겠습니다. 

‘시는, 좋은 언어 습관을 갖으려고 노력하는 일’

5

3. ~ 있다

역시 습관적으로 쓰는 말 중 하나입니다. 

"너는 나에게 오고 있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있다"

두 번 반복하면 대체로 지루합니다. 

"너는 나에게 오고 있다

나뭇잎이 떨어진다"

한 글자라도 줄일 수 있으면 줄이세요. 

우리도 그렇지만 시도 다이어트를 좋아합니다. 

줄이는 게 좋습니다.

마치 경기를 바로 앞둔 레슬링 선수처럼

언어와 다툴 때는, 언어를 다룰 때는

먼저 자신의 몸집을 평소보다 줄이면 좋습니다. 

시에서도 많은 말은 자주 화근이 됩니다.

좋은 생각을, 상상력을 전달하고 싶은데

계체량에서 떨어져서 경기도 못 해보고 지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시 쓰는 일 역시 그렇습니다.

가령 이런 문장.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기차는 오지 않고 

네가 철로로 들어오고 있다”

“있다”,를 빼면 더 좋습니다. 

이렇게요. 

“기차를 기다리는데

기차는 오지 않고

네가 철로로 들어온다”

기차를 기다리며 ‘너’를 상상하는 문장입니다. 

조금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언어를 줄여보는

습관을 갖으려고 노력해 보세요. 

6

4. ~하자 ~했다

역시, 우리가 많이 쓰는 말입니다. 

문어체입니다. 

잘 쓰지 않는 말입니다. 

"저녁이 오자

나무들이 짙어졌다"

이런 문장은 설명입니다. 

"저녁이 오고

나무들이 짙어졌다"

이게 진술입니다. 

글자 하나 차이입니다. 

시는 설명을 싫어하고 담백함을 좋아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자 네가 나를 사랑했다”, 보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가 나를 사랑한다”, 

이게 더 낫지 않을까요. 

설명하지 마세요. 

시는 어쩌면 설명의 반대편일 겁니다.

그래서 시를 '운문'이라고 정의합니다.

운문의 반대말은 산문이지요.

시는 우리가 일상에서 쓰던 말을 

확 줄인 말. 거칠게 시를

이렇게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7

5. 피동형

시는 피동형의 문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실 시뿐 아니라 문학적인 문장들 자체가

피동형을 싫어합니다. 

피동형은 의도적인 경우 외엔

습관화 된 언어가 대부분입니다. 

잘못된 습관입니다.

“찢겨지는 저녁의 감정들”

이런 문장.

“찢기는 저녁의 감정들”

이렇게 써도 충분합니다. 

더 나아가 

“저녁이 찢는 감정들”

이렇게 피동형을 피하면 더 좋겠지요. 

글자수를 줄일 수 있는 것은 덤입니다.

“지나가버린 시간들”

우리는 이런 말에 익숙하지만 사실

“지나간 시간들”

이렇게만 써도 충분합니다.

마찬가지로 글자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읽기에도 편합니다. 

“우리가 생략되는 시간들”

이렇게 쓰는 것보다는

“우리를 생략하는 시간들”

이 문장이 더 좋겠습니다. 

시간이 우리를 가끔 생략하고, 지우고,

자신만 흐릅니다. 

비가 오는 날은 더욱 그렇습니다.

비는 이곳의 많은 길들을 생략하면서 내립니다. 

우리의 고정 관념 중 하나가 

‘시는 좀 거창하고 멋있게 써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까 말이 길어집니다.

특별한 경우 아니면 

기본형의 문장이 더 힘이 셉니다. 

많은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쓰다 보면 쉽게 잘 안 보일 텐데요,

자신이 쓴 시의 피동형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시 안의 글자수를 줄여보세요.

한 글자라도 줄여보세요.

그러면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른 단어로 대체할 수 있는 단어를

시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러 단어가 있지만

몇 가지 단어를 생각해봤습니다. 

시는 대부분 ‘기억’의 문제이고

기억을 다루기 때문에

시는 기억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빈 기표입니다.

마치 '역전 앞'과 같은 말입니다.

언어를 아끼는 장르에서

언어를 이중으로 쓰니까 

이런 말들은 시가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뭇잎의 기억이 나에게 떨어진다" 대신

"나뭇잎의 이마가 나에게 떨어진다", 

이렇게 써 보세요.

기억이 이마로 바뀔 때 우리는 

이마라는 이미지 하나를 더 얻을 수 있고 

그 이마는 바로 기억일 것입니다.

시는 구체적인 언어를 좋아합니다. 

"그날, 마구 흩날리던 눈발의 기억", 

이렇게 쓰지 마시고

"그날, 마구 흩날리던 눈의 발가락들"

이렇게 써보세요.

그 발가락들은 문득,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소중한 발이 되고 나아가 

나와 함께 한 기록들이 될 겁니다.

9

7. 추억

기억과 비슷한 이유입니다.

미래에 대해 쓰는 시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길에 뒹구는 추억" 대신

"길에 뒹구는 발목들", 이렇게 써보세요.

“너와 함께 있던 바다의 추억” 대신

“너와 함께 듣던 속초의 파도 소리”, 이렇게 써보세요.

추억을 질질 끌고 발목들이, 파도 소리가 

나의 문장으로 걸어오고 밀려올 겁니다.

10.

8. 삶

시는 어떠한 경우든 예외없이

삶을 기록합니다. 의도적인 경우 외엔

"삶"도 다른 단어로 바꾸는 것이 좋겠지요.

"연못에는 많은 삶이 있다" 대신

“연못에는 많은 식물이 있다”, 이렇게 써 보세요.

식물의 삶이 덤으로 나의 삶에 얹어집니다. 

시의 비밀은 

이렇게나 사소한 곳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단어들 정말 많습니다.

시를 고칠 때 다른 단어로 고쳐보세요.

찾아보세요. 

구체적으로, 최대한 구체적으로. 

시가 싫어하는 말들을 쓰지 않을 때, 

역설적으로 

시 쓰는 일은 시작될 것입니다. 

시를 쓰면서 그 느낌을 간직해보세요.

몸에 기록해보세요. 

몸의 기억은 정말 무서운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