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무리흰돌문학관

은혜의 방/오늘의 말씀

말씀 듣기를 원하는 종의 기도

루스드라 2025. 1. 11. 15:27

<작성자 유도순>

 

시편 143편, 인자한 말씀 듣기를 원하는 종의 기도

 

요절 : 8절,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나의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받듦이니이다.

 

143편도 다윗의 시인데 구조는, “주의 종(2, 12)이, 원수들”(3, 9, 12)로부터 박해를 당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시편이 이러한 상황전개임을 유의해야만 합니다. 이는 시편이 “시”라는 문학형식으로 기록이 되었으나 배경은 “전쟁의 날에”(140:7) 한, 전쟁마당에서 기록이 된 영적 싸움의 기록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싸움은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하리니” 하고 선언하신 창세기 3:15절부터 시작이 되어 계시록에서 “이루었도다”(계 21:6) 하고, 여자의 후손의 승리로 끝나게 되는 전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핵심은 18번이나 등장하는 “주”에 있고, 중심점은 박해를 당하는 다윗이 “주의 종”(12)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종이, 주인에게, “참담한 심정”(첫째 단원)을 호소하면서,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둘째 단원),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셋째 단원) 하고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첫째 단원(1-4) 상한 심령 참담한 마음

둘째 단원(5-9) 인자한 말씀을 듣기를 원함

셋째 단원(10-12)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

 

첫째 단원(1-4) 상한 심령 참담한 마음

 

①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1) 합니다.

㉠ 141편에서도,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임하소서”(1) 간구하고, 142편에서도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1) 하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 그런데 다윗은 덮어놓고 응답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주의 진실(眞實)과 의(義)로 내게 응답하소서”(1하), 즉 하나님의 의로우신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시라도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하셨다면 우리는 더욱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② 그런데 다윗은,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2) 하는 것이 아닌가?

㉠ 이는 두 마디로 되어 있는데,

㉮ 첫째는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다”는 말은, 자신도 죄인이라는 것과,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죄에 대한 징벌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 둘째는 “심판을 행치 마소서” 하는 말입니다.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인정을 하면서, 동시에 “심판을 행치 마소서” 하는데 디램마가 있고, 풀어야 할 난제(難題)가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을 뒤에 가서 대하게 될 것입니다.

㉡ 문제는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 지 오랜 자 같이 흑암한 곳에 거하게 하였나이다”(3) 하고, 모두가 열 두절에 불과한 본문에 “원수”라는 말이 3번(3, 9, 12)이나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 143편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한 징벌을 당할 때에 지은 시로 인정이 되고 있는데, 나단선지자는 다윗이 범한 죄에 대해서,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다”(삼하 12:14)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본문의 “원수”는 누구며, 나단이 말한 “원수”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가 누구이든 구속사의 맥락으로 보면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계 12:10) 한, 참소자요 원수는 사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3) 한 원수나,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한 원수는 사탄의 하수인(下手人)인 것이 됩니다.

현대교회는 이런 논리를 싫어하고 미워합니다. 그러나 사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와, 역사의 배후에서 발동하는,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엡 6:12)을 부정하고는 단말마(斷末魔)적으로 치닫고 있는 오늘의 죄악상을 설명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4) 합니다. 다윗의 진술은 무고히 박해를 당할 때의 진술과는 구별이 됩니다. 17:1절에서는, “여호와여 정직함을 들으소서, 거짓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오는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 합니다. 이는 깊은 죄의식에서 나오는 탄식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해답이 무엇이란 말인가? 계속되는 관찰에서 깨닫게 될 것입니다.

 

둘째 단원(5-9) 인자한 말씀을 듣기를 원함

 

④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5),

㉠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셀라)”(6) 합니다. 형제여, 여기 “참담”한 상한 심령을 치유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 그것은 “옛날을 기억하고”,

㉯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5),

㉱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즉 기도하면서,

 

㉲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6) 한 갈망입니다.

다시 말하면 옛적에 바로의 노예였던 참담한 상태에서 구원하여주신 “출애굽”이 사실이라면 지금 당면하고 있는 시련이나 징벌에서도 능히 구원하여주실 것을 확신할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점을 로마서에서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않겠느냐”(롬 8:32) 하고 반문합니다.

㉡ 그래서 “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혼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7) 하고 호소합니다.

 

⑤ 그리고 요절로 정한 말씀이 나오는데,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8상) 합니다.

㉠ 핵심은 다윗이 듣기를 사모한 “주의 인자한 말씀”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143편은 “회개 시, 또는 참회 시”로 분류되고 있는데 다윗이 듣기를 간구한 “주의 인자한 말씀”이란,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32:5) 한, 말씀을 듣기를 원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 다윗이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32:1) 하고 진술했다는 것은,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들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음만이,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다” 하면서 동시에, “심판을 행치 마소서” 하는 난제(難題)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즉 믿습니다. “내 영혼을 주께 받듦이니이다”(8하), 즉 맡깁니다. “내가 주께 피하여 숨었나이다(9), 즉 추격해오는 원수를 피하여 도피성에 숨었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굴에 숨은 절망적인 상태인 57편에서도,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57:1) 하면서,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57:10) 하고, “주의 인자한 말씀”을 붙잡고 찬양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107:20절을 보십시오.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합니다. “말씀을 보내신다” 합니다.

 

 주의 인자한 “말씀”이 우리의 상한 심령을 치료하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합니다.

“아침에” 듣게 해달라는 것은 신속한 응답을 구하는 것이지만, 구약시대의 시간이란,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을 기다리는 밤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인자한 말씀을 듣기를 원함”입니다.

 

 

셋째 단원(10-12)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

 

⑥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 주의 신이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10) 합니다.

㉠ 셋째 단원은 결론부분입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10상) 합니다. 이를 바꿔 말하면 “하나님은 나의 주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12하) 하는 것입니다.

외람됩니다만 제가 제일 힘 있게 붙잡고 있는 점이 “그리스도는 나의 주시오, 나는 주의 종이라”는 점입니다.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주의 종이요, 나에게는 “주의 이름”이 걸려 있다는 것, 그래서 “주의 이름을 인하여” 감당할 힘을 공급해주시고, 연약하여 넘어졌을 때에도,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롬 14:4) 하시는, 이보다 우리를 격려하는 말씀은 달리는 없습니다.

 

 

⑦ 그래서 다윗도,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11) 하는 것입니다.

㉠ 자신에게는 “주의 이름”이 걸려 있다는 고백입니다. “주의 이름을 인하여, 주의 영예를 위하여” 나를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 재차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의 원수들을 끊으시고 내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멸하소서”(12상) 합니다. 자신에게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주의 인자하심으로”, 즉 자신을 양을 치는 목장에서 택하셔서 기름을 부으시고, “네 위가 영영히 견고하리라” 하고 세워주신 메시아 언약을 인하여 원수로부터 구원하여 달라고 호소합니다.

㉢ 그리하여 마지막 말은,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12하) 하는 것입니다. 형제도 그러합니까? 저도 그러 합니다. 이것이 “인자한 말씀 듣기를 원하는 종의 기도”입니다.

 

적용 : 본문에는 “주의”가 10번이나 등장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는, “나의 뜻대로, 나의 유익, 나의 자존심, 나 잘되고, 나 복 받고” 하는 “나의”가 중심이 되어 있지 않은가 심각하게 반성해야만 하겠습니다.

이런 특성이 다름 아닌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한 말세의 징조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도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 하고 구하여야 하겠습니다.

 

묵상

㉠ “인자한 말씀”에 대한 구속사적 의미에 대해서,

㉡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여 달라”(11)는 뜻에 대해서,

㉢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12)에 대한 형제의 각성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