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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돌문학관/타인 칼럼

고향의 말

루스드라 2023. 7. 13. 22:15

[시로 읽는 삶] 고향의 말

비둘기가 온새미로 우는 숲의 아침 안개와// 꾀꼬리가 예그리나 날개 치는 한낮 햇살과// 사슴벌레가 그린나래 펴는 초저녁 개똥벌레와// 또랑 건너 늘솔길 도란도란 걷는다// 꿈속의 고향은 다 이러한가

-양문규 시인의 ‘고향’ 부분

온새미, 예그리나, 그린나래 같은 단어들이 정겹다. 모국어의 정취라고나 할까. 이런 단어들을 대하니 고향이 그리워진다.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익힌 고향의 말은 잘 익은 연시감처럼 말랑말랑해서 다정하다.

‘예그리나’라던가 ‘그린나래’ 같은 말은 어감이 순우리말처럼 곱다. 그런데 순우리말이라기보다 한자와 우리말이 변용·합성되어 생겨난 말이라고 한다. 예그리나는 사랑하는 우리 사이라는 뜻이고 그린나래는 그린 것처럼 아름다운 날개라는 뜻이다. 늘솔길 역시 합성어로 늘 솔바람이 부는 길이란 뜻이라고 하는데 어감이 예쁘고 좋다.


가끔 아주 생소한 단어가 입안에서 맴돌 때가 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자주 쓰시던 말이다. ‘지며리’ 라던가 ‘끌끌하다’ 혹은 ‘구덥’ 같은 말들은 평소 전혀 쓰지 않던 단어들인데도 어떤 때 불쑥 튀어나온다. 지며리는 차분하고 꾸준한 모양을 뜻하고 끌끌하다는 마음이 맑고 바르고 깨끗하다는 뜻이다. 잊고 있던 단어들이 생각나면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어머니의 말은 순수한 우리말이어서 더 값지다. 이런 단어들 속에서 고향을 만난다.

말이 표준화되면서 지방의 고유한 말들이 많이 사라졌다. 우리의 고유어를 발굴해 작품 속에서 사용·보존하는 일은 작가들의 몫이다. 대표적 작가가 작고하신 이문구 선생이다. 그는 방언과 속담, 비어는 물론이고 개인이 만든 조어에 이르기까지 우리말을 개척해온 독보적 작가다. ‘이문구 소설어사전’(고려대 민족문학연구원 발행)이 나올 만큼 그의 어휘력은 풍부했다. 이 사전은 이문구 선생의 소설에 나오는 어휘를 종합 정리한 사전이다. 이문구 선생의 대표작 ‘관촌수필’은 충청도 지방 사투리를 비롯한 순우리말의 보고라고 할 만큼 풍성한 어휘들의 숲이다.

우리말의 묘미라고나 할까. 우리말에는 동물이나 새의 새끼에게 각각 이름을 붙여 부르고 있다. 소의 새끼는 송아지이고 말의 새끼는 망아지이듯 곰의 새끼는 능소니, 범의 새끼는 개호주, 꿩의 새끼는 꺼벙, 제비 새끼는 연추, 꾀꼬리의 새끼는 추앵, 노루 새끼는 장사니라고 부른다. 물고기들도 새끼의 이름이 재미있다. 명태 새끼는 노가리, 고등어 새끼는 고도리, 농어 새끼는 껄떼기, 갈치 새끼는 풀치, 방어 새끼는 마래미, 가오리 새끼는 간자미, 조기 새끼는 꽝다리, 열목어 새끼는 팽팽이, 숭어 새끼는 모쟁이라고 한다.

사나운 짐승이라 할지라도 새끼는 다 귀엽고 돌봄이 필요하다. 아기에게 별명을 지어 부르며 병 없이 잘 자라도록 바라듯이 새끼 곰에게 능소니라는 적절한 이름을 붙여 인식의 차별화를 하고 있다. 우리말 어휘의 풍부함이다. 우리 조상들은 사물 하나하나에 깊은 존중이 있었던 것 같다. 존재의 개별화를 일찍부터 인정해온 것 아닌가 싶다.

영어도 제대로 안 되고 모국어도 점점 잊혀 가는 이민생활. 들으려고 애를 써야 하는 타국에서 들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들리는 모국어는 마음의 고향이다. 단어가 아우르는 풍경, 단어가 품고 있는 인정이 그리워진다. 말은 하지 않으면 잊히게 마련이다. 말이 점점 거칠어지는 요즘 고운 우리말들을 찾아봐야겠다.


조성자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