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4:13_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2021. 7. 15. 23:46


 
긍정의 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이 구절 정말 오해 많이 받고 잘못 인용되는 대표적인 성구입니다. 얼마 전에도 어떤 분이 이 구절을 근거로 간증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자기는 예수님이 주신 능력으로 외국 유학도 가고 자기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성공을 이루었다는 것이었답니다.

정말 믿음만 있다면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까? 마치 나폴레옹의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의 기독교 버전과 같습니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어!" 자기가 꿈꾸는 것을 이루려는 욕망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종종 믿음이란 거룩한 단어로 포장됩니다. 자기 꿈을 믿음으로 이루었다는 성공한 사람들의 간증을 듣고 사람들은 용기를 얻습니다. 나도 믿으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다짐하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그런 다짐은 보통 그때뿐입니다. 현실은 녹록하지 않고 믿음처럼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도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마다 또다시 쨍하고 해 뜰 날이 곧 오리라는 확신을 주는 설교를 듣고 기분 전환을 하고 용기를 냅니다.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이루기 위해 전보다 더 큰 믿음을 가져 봅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그때뿐 오래가지 못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 적당한 수준이라면 삶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심리적으로 잠시 기분을 좋게 하는 기능을 하니까요. 과하지 않은 적당량의 술처럼요. 그러나 진짜로 믿을 때는 문제가 발생하지요. 이런 믿음은 힘든 상황에서 기분을 잠시 좋게 하는 마약에 취한 것일 뿐이지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고 좋아하는 것만 믿고 싶어 합니다. 마음이 불안할수록 믿음을 통한 성공 신화를 가르치는 설교는 너무나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이런 가짜 믿음을 성경의 믿음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정말 현대 기독교인들의 심각한 병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이 구절은 무슨 뜻일까요? 빌립보서는 가택 연금에서 굶주리며 비참한 삶을 살던, 죽음도 수용하겠다고 결심한 사도 바울의 마음을 담은 편지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습니다(빌 2:17)."

가택 연금의 문맥에서 13절의 뜻을 찾아보면 그 뜻이 분명해집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빌 4:11~14)."

 

여기서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빌립보서 4장 13절은 결코, 예수님과 함께하면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어떤 상황이든지 다 수용할 수 있고 자족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풍요뿐만 아니라 가택 연금에서의 배고픔과 비참함도 자족하면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바울은 자신의 연금 생활을 포함하여 여러 상황을 걱정하던 그들에게 염려하지 말고 항상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이 기쁨은 결코 기분의 감정에 의존하는 기쁨이 아닙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그의 말씀은 주의 재림을 바라보며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족하는 긍정적인 자세로 살라는 말입니다(4:4).

 

바울은 자신이 궁핍에 처해 있다고 그들에게 고백합니다. 바울은 전부터 빌립보 교회의 후원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4:15-16과 행 18:5 및 고후 11:8~9 참조).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도 바울을 물질적으로 돕기로 한 것("고난에 동참한 것은" 4:14)에 대하여 칭찬하지요. 당시 가택 연금은 갇혀있는 사람이 스스로 먹고 입고 생활하는 것을 해결해야 했기에 외부 도움이 필요했지요. 그래서 바울은 그들이 보내준 선물에 대하여 감사를 표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헌금에 의존하지 않으며 그들에게 선물을 바라지도 않는다고 고백합니다(빌 4:17) 궁핍함 속에서도 자족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의 의미입니다. 사도바울은 가택 연금 상태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고 빌립보 성도들에게 물러나지 않는 세상을 이기는 강한 믿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Your Dream comes true!"

"꿈이 현실이 됩니다.

믿음으로 현실을 만드십시오."

이런 환상에 빠지지만 않아도

여러분의 행복지수는 많이 개선될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은 당장 기분은 좋게 만들 수는 있어도

근본 해결책이 아닙니다.

 

그 효과는 술이나 마약과 같은 것이지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극히 일부가 그렇게 성공했다 해서

모두가 그렇게 될 것 같은 환상에 속지 마십시오.

이런 꿈을 꾸는 사람들이 더 많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고

오히려 훨씬 비참한 삶을 살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이는 현실적으로 조장된 과대망상증의 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직업적으로 가르치고 설득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관심과 돈을 끌어모아 성공할지 몰라도

다른 이들은 비현실적 환상에 오히려 피해자가 됩니다.

현실은 대부분 이들을 비참하게 배반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심리학계에서도 검증된 사실입니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 교수(프린스턴대)는 긍정적 상상과 자기 암시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크게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지나친 자신감으로 비합리적이고 거창한 계획을 세운다는 것입니다(<실행이 답이다>, 이민규(동명이인입니다), 더난출판 2011, 19~20쪽에서 재인용)

 

가브리엘레 외팅겐 교수(펜실베이나대학)는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여성 중에 한 그룹에는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다는 "긍정적 상상"을 시켰습니다. 다른 그룹에는 실패할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 상상"을 시켰지요. 1년 후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부정적 상상을 한 집단의 다이어트 성공률이 훨씬 높았습니다. 비슷하게 대학생들에게 2년 동안 한 그룹에는 원하는 직장에서 일하는 직장에서 일하는 상상을 시켰습니다. 그들은 그렇지 못한 그룹에 속한 학생들보다 취업률도 낮았으며 보수도 훨씬 적게 받게 되었습니다(같은 책 20쪽 재인용)

 

예전에 한동안 유행하던 <시크릿, 1%만이 알고 있다는 부와 성공의 비밀>이란 책의 내용, 너무 신뢰하지 마세요.

 

신앙은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배워 나가는 것이지 내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의 성공과 믿음을 수학 공식처럼 지나치게 결부시키는 것은 위험합니다. 지금 감사하고 열심히 살 뿐 미래에 대한 너무 지나친 환상을 가지지 마세요.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욕심입니다. 지금 자족하고 행복하세요. 그리고 넉넉하게 미래를 받아들이세요. 미래에 대한 꿈에 부푸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꿈에 집착하다가 철저하게 배반을 당하지 않으려면요.

출처: 이민규(한국성서신학교 신약학)

'은혜의 방 > 오늘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  (0) 2025.11.30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0) 2025.11.29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라  (0) 2025.11.25
기도의 함정  (1) 2025.11.24
하나님의 자비  (0) 2025.11.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