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무리흰돌문학관

흰돌문학관/수필

어머니의 마음

루스드라 2021. 10. 11. 11:53

(화순문화원 투고)

어머니의 마음

이성교

(화순문협 감사)

 

귀촌한 지 6년째 시골살이를 하고 있다. 그런 우리에게 가끔 들르던 둘째 아들이 우리와 10여 일을 지내고 돌아가는 아침이다.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준비해 둔 반찬과 과일을 챙겨주며 가지고 가라는 아내와 안 가져가겠다는 아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그것을 지켜보는 내 머릿속에서는 10대의 내 모습이 어른거린다. 아니 이미 나의 유체는 이탈해서 내 어릴 적 어머니와의 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오랜만에 아들이 오자 아내는 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냉동실에 아껴 두었던 재료들을 꺼내어 매끼 마다 새로운 반찬을 만들어 상을 차렸다. 그리고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넉넉하게 만들어 따로 남겨두기도 했다. 아내는 아들이 돌아갈 때 챙겨 줄 요량으로 그런 것이다. 오랜만에 아내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아들이 야속할 법도 하다. 그런데 아내는 아들의 뒤를 따라가면서 기어이 차에 실어 주었다. 그쯤이면 한사코 그냥 가겠다고 했던 아들도 못 이기는 척하며 가지고 간다. 그것이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이다. 그런데 나도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때가 있었다.

늦은 나이에 광주에 나가 공부를 시작한 나는 자취를 했다. 그리고 주말이면 집으로 내려와 일손을 거들어야 했다. 솔직히 말하면 반찬을 가지러 온 것이다. 일요일 늦은 오후에 광주로 돌아갈 때는 어머니께서 일주일 먹을 반찬을 챙겨주셨다. 그때마다 나와 어머니는 실랑이를 벌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늘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해야 할 몫의 일까지 감당하시는 어머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합리화해 본다. 그렇지만 어머니께서는 내가 안 보는 사이에 보따리 사이에 몇 가지를 더 끼워 놓으셨고 나는 그것을 맛있게 먹곤 했었다. 지금 혼자 지내는 아들의 마음이 그때의 내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들과 지낸 10여 일은 집안에 생기가 돌았다. 그런데 아들이 돌아간 후 둘만 남은 집안은 다시 고요하기만 하다. 늘 그랬듯이 덩그런 집안에 둘만의 일상으로 돌아와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감성이 예민해진다고 하더니 아침의 일로 종일 어머니에 대한 일들이 자꾸 맴을 돌았다.

어머니께서 소천하신 이듬해 봄은 너무도 달랐다. 파릇한 새싹이 돋고 복사꽃이 피는 봄은 변함이 없는데 지난해와는 사뭇 다른 봄기운이었다. 불과 몇 개월이 지나고 맞이한 봄인데 너무도 달랐다. 알 수 없는 무력감으로 참 힘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운전하는 차를 세워놓고 한참을 멍하니 먼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 후 힘들고 지칠 때면 가끔 하늘을 쳐다본다. 그러면 그때의 하늘이 다가와 위로를 한다.

어머니께서 소천하신 후 홀로 계시는 아버지를 뵙는 일은 더욱 힘들었다. 어머니께서는 생전에 아버지께서 새로운 반찬이 아니면 식사를 잘하시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런데 아내가 만든 음식이 아버지 입맛에 맞을 리가 없었다. 그보다 더 힘든 일은 아버지만 홀로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아버지께서는 어서 가라고 하시며 손을 저으셨지만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집에 도착하기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 다녀오는 날에는 아내의 마음이 아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 소천하신 이듬해 가을걷이가 끝난 어느 날 퇴근하던 길에 아버지를 뵈러 갔다. 돌아오려는데 아버지께서는 검은 봉지에 싼 서리태콩을 주셨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고개를 숙인 채 낚아채듯이 받아들고 차에 올랐다. 봄에 텃밭을 보신 이웃집 할머니께서 어쩌면 어머니 생전에 가꾸던 것처럼 똑같으냐면서 혀를 내두르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농작물과의 대화로 이겨 내시며 버티신 것이다. 아마 어머니와 함께 한 날들을 떠올리시면서 눈물로 한 포기 한 포기 가꾸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곡물이 아니라 아버지의 땀과 눈물의 열매가 맺힌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어머니의 빈 자리가 너무나 컸던 그때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전날 짐을 정리하는 아들을 보면서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10여 일을 함께 지내던 아들이 머물다간 빈자리가 자꾸 눈에 밟힌다. 아내와 함께 있는 내 마음도 이런데 하물며 배우자를 잃은 아버지의 마음을 그때는 너무나 알지를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막연히 외로우실 것이다. 평소 강한 분이시니 잘 이겨 내시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이솔직한 심정이다.

어머니의 말씀은 모두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칠순의 나이에도 어린아이 대하듯이 따라다닌다. 그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다. 내 아들은 어머니의 마음을 좀 더 일찍 깨달아서 나처럼 늦은 나이에 허공을 보며 소리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흰돌문학관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에게 주석 자리를 맡기고야 말겠다.  (0) 2021.12.11
정지용과 이동원  (0) 2021.12.01
화순군민신문 원고  (0) 2020.08.02
(화순문학원고) 백일홍 심은 뜻은  (0) 2019.12.09
아내의 수필  (0) 2018.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