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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돌문학관/시

시적 변용과 형상화

루스드라 2022. 2. 20. 15:53

<강의자료>

시적 변용과 형상화

문병란(조선대교수, 시인)

요즈음 양산되는 시들을 보면 초보자이든 이력을 쌓은 경우든 시와 산문이 구분되지 않은 시적 해체를 보게 된다. 의도적 해체나 반 시운동은 그 나름대로 변혁 의지쯤으로 볼 수 있으나 수필의 감상을 행과 연으로 전개했다고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저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잡문적 성격의 수시수상 낙서글 같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을 가지고 실험시, 새로운 시 떠들어도 난처한 일이다.

소설 한 권으로 쓸 것을 짧은 시 한 편으로 쓴다면 전적으로 시의 생명은 함축적 표현’1)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함축, 그것이야말로 시의 생명이며 비법일 것이다.

시적 변용과 형상화 즉 시 만드는 기법에 대해서 이근모 시인의 노을이라는 시를 감상하면서 췌언을 더 할까 한다.

변용이란 일종의 데포르마시옹(deformation)으로 미술 용어이기도 하다. 대상의 자연 형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주관에서 모양이나 형태를 의식적으로 확대하거나 변개하여 표현하는 그 기법을 문장이나 시문에서 차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30년 모더니즘 운동에 참여한 박용철 시인의 <<시적변용>>이란 평론이 그 한 예가 되겠다.

리어카 바퀴에 감겨있던 노을

불꺼진 방 어둠을 갉아 먹는다.

&lt;노을의 첫연&gt;

이 시구를 산문적으로 이해한다면 어리석은 헛수고에 그친다. 불이 어두움을 어떻게 갉아 먹는가. 이는 주관적 정서적 해석을 통해 실감을 부여한 것이다. 이런 표현이 지나칠 때 난해성이 오지만 적당할 때 수많은 사실적 설명과 논리적 사고를 함축적으로 표현하여 갉아먹는다고 표현한 것이다.

가장 오래된 뇌세포만이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

생글생글 웃음 짓는 홍안같이

서산 등선 마루에 걸친 노을

&lt;노을 제2&gt;

마치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마취된 환자의 흐릿한 몽환 상태를 느끼게 하는 표현으로 노을을 정서적으로 형상화 했다. 이 시 한 편만으로도 그가 만만찮은 T.S.엘리어트를 졸업한 모던한 시학도 임을 직감케 한다.

읊으는 시와 만드는 시, 자연발생적 인습의 감상시와 주지적 창조적 생각하는 시 의미하는 시가 아니라 존재하는 시 현대적 모더니티란 흉내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시사를 관리하는 수많은 업적의 결과물로써 시 삼백에 시무사의 경지에 이르듯 선인들의 명시 몇백 편을 줄줄이 외워야 깨치는 시 미학의 경지가 있다.

이근모 시인은 야무지게 터를 닦아 적어도 자연발생적 인습적 감상 배설의 푸념이나 넋두리의 경지에 접근했음을 작품으로써 말해주고 있다.

&lt;노을의 제2&gt;의 끝부분은 다음과 같다.

팔고 남은 생선 한 마리

리어카 좌판에서 뒹굴고

석양에 지친 그림자 드리우며

문지방 들어서는 아들

치매 엄마 눈동자엔

첫돌 맞은 모습만 생생할 뿐

파란중첩 삶의 애환

노을 저편으로 달린다.

&lt;노을 끝부분&gt;

위의 시는 누구의 흔적도 없이 오직 이근모의 &lt;노을&gt;이다.

마치 반고흐의 그림을 보듯 어질어질하다. 필자는 이것을 시적변용이라 한다. T.S. 엘리엇 가라사대 삼류 시인은 모방하고, 일류 시인은 표절한다.’고 했던가. 서투른 흉내는 이류가 되지만 감쪽같이 훔쳐먹고 완전히 소화하여 피 만들고 똥 싸버리는 기똥찬 천재는 표절(훔치기)하는 것일까. 이근모를 천재라 한다고서 큰일 날 일은 아니지 않는가.

병사가 전쟁터에 나가서 이기려면 신무기가 필요하듯이 경쟁이 필요한 세상에 내놓는 시라면 신무기 하나쯤 있어야 한다. 당신의 신무기는 무엇입니까? 물으면 이것이라고 내놓을 시가 있어야 시를 쓰는 당위성이 있을 것이다.

자인의 시가 아니라 졸렌’2)의 시라고 만드는 시로 나아가려는 그의 모더니티에 대하여 다시 한번 기대를 건다.

 

1) 함축적 표현 :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내면에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 흔히 시에서 말하는 내포적 의미나 metaphor 기능을 말한다.

2) 자인(sein) : 독일어로 존재. soiien은 당위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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