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무리흰돌문학관

흰돌문학관/시

김신정 외 현대시론

루스드라 2022. 2. 23. 17:06

『현대시론』

- 지은이 / 김신정·오성호·유성호·오문석

- 펴낸 곳 /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 펴낸 때 / 2015년 7월

제1부. 시의 본질

제1장. 시를 읽는다는 것

1. 시란 무엇인가

1) 시의 정의와 변천 과정

- 동서양 모두 고대사회에서 시의 범주를 현재보다 더 넓고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했다. 시의 범주는 단일한 개념으로 고정되지 않고 변천을 거듭했으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시의 양식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2) 시의 언어와 용법

- 워즈워드: 산문의 언어와 시의 언어는 운율적인 특성을 제외하면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시골 사람들이 쓰는 시골말을 시의 언어로 선택해야 한다. 자신들의 감정과 생각을 단순하고도 꾸밈없는 표현 방식으로 전달하는 보통 사람들에게서 시어의 가능성과 의의를 발견했다.

- 시어와 일상어가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니는 이유는 시의 언어와 일상어 사이에 속성의 차이가 있어서라기 보다 언어의 용법이나 기능, 궁극적인 목표 등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 일상적 언어와 시적 언어의 차이

"나는 맹인입니다." vs "봄은 곧 오는데 나는 봄을 볼 수가 없습니다."

⇒ 일상어, 과학 언어에서는 지시 대상을 어김없이, 정확하게 지시하고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반면, 시의 언어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정서를 빚어낼 수 있을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다.

2. 시는 왜 어려운가

1) 시가 어려운 이유는, 시를 읽으면서 일상생활에서의 언어 사용 방식대로 시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2) 시의 언어는 기호의 외연을 바탕으로 그 위에 문맥에 의해 부여되는 새로운 의미나 정서를 덧씌우는 작업을 통해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것으로 목표로 한다. 시의 언어는 외연적 의미, 즉 개념 지시의 차원을 넘어선 언어의 상태를 지향한다. 언어의 함축성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함축성은 언어가 암시하는 분위기, 다의성, 상징성 등을 포괄한다.

3) 시적 언어의 가장 중요한 특질의 하나는 그 내연적 기능을 얼마나 잘 살리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4) 시를 읽을 때는 언어가 상징하는 분위기, 상징성, 다의성 등을 파악하여 작품을 읽어야 한다.

5) 시에서는 하나의 길이 아니라 둘 이상의 길을 선택하여 언어의 뉘앙스를 풍부하게 하는 것이 시어의 함축성을 강화하는 방법이다. 애매성은 시에서는 언어의 풍부함과 미묘함을 증가시키고 복잡성을 띠게 하는 기능을 한다. 이 복잡성이 시어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6) 시에서의 애매성이란 인생사와 인간의 진실에 가닿으려는 시인의 절실한 태도에서 나온 것이며, 시는 인생과 인간의 내면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문학 장르라고 할 수 있다.

7) 시의 어려움은 곧 시의 특징이자 시를 읽는 즐거움을 이끌어 내는 요인이기도 하다.

3. 지금, 왜 시를 공부하는가

- 시는 인간의 내면에 대한 성찰을 돕는다. 시는 여러 겹의 의미를 하나하나 열어가거나 혹은 하나의 대상을 다양하게 해석해 보는 즐거움을 이끌어낸다.

- 애매하고 함축적인 방식으로 말하는 시는 세상의 주류와 다른 논리를 통해 말의 다른 가능성을 실현한다.

- 시의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다양한 말하기의 방식, 그 가운데서도 세상의 중심에서 잘 포착되지 않는 소외된 목소리, 혹은 타자적 말하기의 방식에 주목할 수 있다.

- 우리가 시를 공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시가 지닌 예술적 가치, 미학적 가치와 관련된다. 시는 삶의 척박함을 견디게 하는 예술의 힘, 미학적 힘을 지닌다.

- 마지막으로 시라는 것은 무용한 것, 무목적인 것의 가치에 대한 깨달음을 주기 때문에 시를 공부하는 의미가 있다.

- 우리는 시를 공부하면서 전현 '쓸데'엇는 것이 지니는 가치, 곧 시가 주는 즐거움과 위안, 그리고 현실적 목표와 실용성에서 벗어난 존재가 지닌 자유로움의 가치, 또한 속물적 사회에 대한 비판과 미적 저항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제2장. 시와 언어

1. '만들어진 것'으로서의 예술

- 모든 예술이 공유하는 공통의 성질 가운데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예술작품이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 재료를 예술적으로 가공하는 것, 즉 수용자가 감각을 통해 지각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형상을 재료에 부여하는 것을 형상화라고 한다. 이 형상화의 과정을 거쳐서 형식화됨으로써 비로소 하나의 예술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형식을 통해 구체화된 내용만이 수용자에게 전달 가능한 것이 된다.

- 형상화 과정에는 재료의 가공과 변형이라는 기술적인 측면이 개입한다. 이때 재료가 되는 사물의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예술가의 주관성을 일방적으로 강요할 경우, 재료가 되는 사물의 손상이나 파괴를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재료의 물성에 대한 앎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 앎은 오랜 기간 재료와 온몸으로 부딪치는 과정에서 어렵사리 체득된다.

2. 언어예술로서의 시

- 사의 창작 역시 다른 예술 작품의 창작과 마찬가지로 그 재료가 되는 언어를 미적으로 가공하고 변형시키는 형상화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다.

- 시가 시인의 주관적인 감정이나 사상, 혹은 이념의 직접적인 토로가 되어서는 안 되며, 독자가 그것을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객관적인 형상을 제시해야 한다. 추상적인 관념 대신 사물의 직접적인 제시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시의 형상화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말을 제대로 부려 쓸 수 있는 기술적인 능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의 성질에 대한 앎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양한 어흐ㅟ의 습득, 그 사전적 의미와 용법을 익히고 시의 문법을 체득하는 것은 말에 대한 앎의 중요한 일부이며 필요조건이다.

- 또 하나 필요한 것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랫동안 의식을 집중시킨 끝에 갑작스레 일어나는 정신의 비약, 즉 '영감(inspiration)이 필요하다.

- 시의 신비는 언어의 신비다. 시인에게 있어서 말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으로 사용한다. 언어의 본성을 회복하도록 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말을 이용하거나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말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언어의 근본적인 속성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 시인들은 기성 언어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쓴다. 시인들은 늘 기성 언어의 제약과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고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시의 언어는 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제3장. 정서, 감각, 사유

1. 정서 / 감정

- 문학·예술에 대한 고대 그리스·로마의 근본 입장은 예술이 인격 도야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입장에서 그들은 정서란 옳은 마음, 나아가서는 옳은 행위로의 자극제로서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정서를 유발하는 정도가 큰 문학이 좋은 문학이라는 생각이 대두하였다.

- "모든 훌륭한 시는 강렬한 감정이 저절로 넘쳐흐르는 것"이라는 워즈워스의 정의처럼, 시는 작가의 정서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낭만주의 시대에 보편화되었다.

- (박용철) 낭만주의적 관점에서 시의 심경은 우리 일상생활의 수평 정서보다 더 고상하거나 더 우아하거나 더 섬세하거나 더 장대하거나 더 격월하다.

- (김기림) 감정의 편중이나 '갑격벽' 자체를 경계하고 감정과 지성이 연결된 변증법적 전체성을 추구하려고 하였다.

- 김소월의 시에 나타나는 감정의 고양과 강렬함은 그만큼 시인이 내면 체험에 충실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감정의 여과를 통해 집중하고 객관화하는 과정을 거쳤음을 의미한다.

2. 감각

- 감각은 오관, 즉 시각·청각·촉각·후각·미각으로 분절된 여러 감각으로 포착된 외부의 자극이 뇌의 중추에 도달함으로써 발생하는 의식의 현상을 말한다.

- 감성이란 여러 감각기관을 통해 외계의 대상에 대한 자극을 받아들이고 감각을 낳는 기초능력을 말한다.

- 시에서 '감각'이 중요한 것은 이미지가 감각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감각적 대상의 재현이거나, 육체의 지각에 의해 생산된 감각이 마음속에 재생된 것이다.

- 김기림은 낭만주의의 '감정'과 현대시의 '감각'을 대립시키는 한편, 감정으로부터의 해방 과정을 현대시의 발전으로 이해하였다.

3. 사유

- 하이데거는 사유와 詩作을 연결시킴으로써 예술로서의 시를 존재의 진리로 고양시킴으로써 시를 단순한 언어의 유희나 주관적인 감정의 표명이라고 보는 견해로부터 구제해냈다.

- 브레히트는 '낯설게 하기' 방식을 통해 현실의 세계를 표현할 뿐 아니라 현실을 '파고들어' 그것이 변화 가능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제2부. 시의 요소

제4장. 시, 시인, 화자

1. 시와 시인

- 대부분의 독자들은 시인과 시 속의 '나'를 동일시해서 읽는 습관이 있다.

-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스는 "모든 훌륭한 시는 강렬한 감정이 저절로 넘쳐흐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시인의 내면에서 형성된 강렬한 감정이 바깥으로 끓어넘쳐 오를 때 그것이 곧 시가 된다는 말로 이해되었다. 여기에서의 감정은 마음의 고요 속에서 회상해 내는 감정, 즉 관조의 대상이 되는 감정을 의미했다.

- 한국의 비평가 김우창은 시란 시인의 체험에서 나오는 것인데 이때의 체험이란 어던 한순간의 실제 체험이 아니라 오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거쳐 통합된 것을 가리킨다.

- 시의 근거가 되는 시인의 체험과 감정은 일상의 실제 체험이나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관조와 반성의 관정을 거쳐 객관화된 체험과 감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2. 허구적 자아로서의 화자

- 워즈워스: 시란 강렬한 감정이 저절로 넘쳐흐르는 것이다.(낭만주의적 관점) → 회상, 관조, 묵상 등이 중요시됨

- 엘리엇: 시란 정서의 방출이 아니고 정서로부터의 도피이다.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성으로부터의 도피이다. 수많은 감정과 이미지, 문구들을 포착하고 융합하는 시인의 창조하는 정신을 강조하였다. 시가 일상의 체험과 주관적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시 창작 과정에서 그것을 제어하고 객관화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시 속의 '나'가 시인과 완전히 동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일반화되었고, 감정의 객관화가 시적 창조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로 강조되었다.

- 시란 시인의 정서를 직접 토로한 것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객관화된 형상물이다. 시 속의 '나'는 시인이 창조한 예술작품 속에 객관화된 존재이며, 하구적 자아이다.

3. 시의 다양한 화자들

- 시에서의 화자는 ① 1인칭 화자, ② 배역으로서의 화자, ③ 함축적 화자의 세 가지가 있다. 이들 화자는 허구적으로 창조된 존재이다. 화자는 시인과 상상적으로 동일시되어야 할 대상이며 예술적 창조물이다.

- 1인칭 화자가 시인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할지라도 실제 시인과 완전히 동일화된 존재는 아니다. 아무리 자전적이고 고백적인 경우라도 허구적으로 창조된 존재이다.

- 배역으로서의 화자는 시인과 다른 제3의 인물로 설정되어 있는 경우이다. 시인이 다른 인물의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것이다.

- 함축적 화자는 표면에 등장하지 않으면서 작품 밖에서 진술하는 경우이다. 객관적인 태도를 지닌 화자를 등장시킴으로써 관찰 또는 진술의 객관성을 강화한다.

제5장. 리듬

1. 시의 음악적 기원과 시

- 시는 시간예술이다. 시간예술에서는 작품의 구성 요소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속적으로 배열 또는 전개된다.

- '읊는 시'에서 '보는 시'로 전환되면서 시어 하나하나의 질료적 가치가 실현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선율과 율림, 그리고 말소리가 환기하는 감각적 자극과 충만함을 직접 경험하기 어렵게 되었다.

- 활자 매체에 의지하는 현대시에서 말소리가 빚어내는 음악적 선율보다 더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은 리듬이다. 인간은 이 리듬을 통해서 개관적인 시간을 주관적으로 지각할 수 있다.

2. 반복과 시의 리듬

- 시에서 리듬은 일차적으로 이상 언어를 '낯설게' 만들고 시어 자체에 주의를 집중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리듬의 존재로 인해 율동적인 언어로 독자 앞에 나타난다. 리듬은 시와 일상 언어, 산문을 구별하도록 해 준다.

- 시에서는 리듬이 의식적으로 강화되고 활성화된다.

- 시에서 리듬을 형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은 반복이다. 반복을 통해서 형성되는 시의 리듬은 주의력의 환기, 암시성의 농축, 감수성의 증대, 시의 제 요소 결합 및 의미의 형성에 기여한다.

3. 시조의 율격과 자유시의 리듬

- 현재 한국 시의 율격은 주로 음보율에 의해서 설명된다. 율격은 음수율(자수율)로 설명된다(3·4·3·4, 3·5·4·3). 음보는 시에서 동일한 음량, 혹은 시간적 길이를 지닌 소리군이 규칙적으로 반복됨으로써 형성되는 율격을 가리킨다. 하나의 음보는 여러 개의 음절로 구성되면 각각의 음보는 동일한 음량(음의 지속시간)을 지닌다.

- 현대시의 리듬은 음수율이나 음보율 개념만으로 해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합적이고 다양한 양상을 보여준다. 근대에 등장한 자유시는 내재율로 불리는 자유율을 기반으로 한다. 자유시의 리듬은 선험적으로 규정된 율격을 준수함으로써가 아니라 개별 시편의 내용을 최대한 실현하는 과정에서 실현된다.

4. 시행 발화와 리듬

- 현대시에서는 시 작품의 외적 형태, 즉 행과 연의 구분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행과 연은 활자로 표기된 시의 리듬을 가시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 시행은 시인의 미의식에 다라 시의 리듬을 시각화하고 공간적으로 배분하는 방법을 통해 결정된다. 행과 행 사이, 연과 연 사이에 개입하는 침묵(휴지)은, 말소리와 마찬가지로 시적 의미의 구축에 큰 영향을 끼친다. 시행은 시의 리듬을 공간적으로 배분하고 가시화하는 중요한 방법이자, 자유시의 리듬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 독자는 시의 리듬을 통해서 시인이 세계와 대상을 지각하고 해석하고 질서화하는 방식에 따라 대상과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 리듬을 가시화하는 중요한 방법인 띄어쓰기나 구두점의 사용 등도 일반적인 문법 규칙을 따르기보다 시인의 의도나 미적 계획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띄어쓰기나 구두점의 사용을 아예 배제한 경우도 있다.

제6장 이미지

1. 이미지의 개념

- 이미지는 "육체의 지각에 의해 산출된 감각이 마음속에 재현된 것"이다. 이미지에는 지각 이미지, 비유적 이미지, 상징적 이미지가 있다.

- 지각 이미지에는 시각 이미지(명암, 투명성, 색상, 동작 등), 청각 이미지(듣기), 후각 이미지(냄새), 촉각 이미지(온도 촉감), 미각 이미지, 신체 기관 이미지(심장 박동, 맥박, 호흡, 소화작용), 운동 이미지(근육의 긴장과 움직임)로 분류한다.

- 비유적 이미지는 주로 비유에 의해서 생성되는 이미지를 말한다. 여기에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로 형성된다. 이미지와 관계있는 것은 보조관념이다. 비물질적인 것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동원되는 물질적인 것이 이미지에 해당된다. 비유적 이미지는 표현의 정확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2. 이미지와 상상력

- 20세기 초 영국에서 시작된 이미지즘 운동에 의해서 단순히 장식적이고 보조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던 이미지를 보는 관점이 독립적인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기 시작하였다.

- 기억을 활성화시키는 상상력의 작용 없이 기억 그 자체만으로 이미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상상력은 기왕의 것을 토대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물의 이미지를 빚어내는 정신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질적이고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상(事象)들 사이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여 이를 종합하고 통일성을 부여하는 능력 또한 상상력과 관련하여 설명할 수 있다. 상상력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거나 결합, 변용시킬 뿐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종합하고 거기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 준다.

3. 이미지즘과 한국시

- 20세기 초 서구에서 등장한 이미지즘 운동이 주로 시각적·회화적 이미지의 구축을 강조한 것은 다양한 감각기관 중 가장 많은 정보를 가장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시각적 경험의 중요성과 함께 이런 사회적 변화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 이미니즘의 수용은 시가 언어의 예술이며 감정이나 이념의 직접적인 토로가 아니라 객관적이고 명료한 형상의 창조를 필요로 한다는 당연한 인식을 일깨웠다. 이와 함께 시인들로 하여금 이미지의 창조만이 아니라 시의 형상성 제고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도록 만들었다.

4. 이미지와 시 작품의 이해

- 이미지가 시에서 중요한 까닭은 이미지가 시인의 상상력과 독자의 상상력이 조우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세계의 감추어진 모습을 포착해서 그것을 이미지로 빚어낸다. 다시 말해 이미지는 사물과 세계와 삶에 대한 깊은 통찰, 그리고 그것을 언어로 객관화하려는 치열한 노력에 의해 창조된다. 이로써 독자들은 시인이 말하려는 것을 의미를 통해서가 아니라 사물의 구체성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 이미지들은 한 사물에 내재된 다양한 속성에 동시에 주목하도록 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언어의 추상성과 관념성을 넘어서 사물 그 자체를 상상 속에서 생생하게 복원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제7장 비유와 상징

1. 비유의 개념과 원리

- 비유는 관념을 구체화하고 생각을 인상적으로 전달하게 위한 일종의 수사학이다.

- 시인이란 참신한 비유, 살아 있는 비유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이 같은 의미에서 시인이 시적 비유를 사용한다는 것은 관용적이고 일상적인 언어의 표준 의미를 뒤바꾸어 놓으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비유는 일종의 '낯설게 하기' 효과를 유발한다.

- 비유는 유추와 전이를 기본 원리로 한다. 비유란 유추를 통해 서로 다른 두 대상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그 결과 한 대상의 의미를 다른 대상에 전이하여 표현하는 과정에 만들어진다. 시적 비유는 두 대상 사이의 이질성과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새롭고 개성적인 의미를 드러낸다.

2. 비유의 종류

1) 직유

- 주지와 매체의 관계를 직선적이고 명확하게 드러낸다. ~와 같이, ~처럼, ~듯이, ~인 양, ~만큼 등의 연결어로 결합된다.

- 어떤 표현이 좋은 비유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것은 문법적인 형태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가져오는 의미 변화의 질과 깊이에 달려 있다.

2) 은유

-(치환 은유) 보조관념이 원관념을 대체하는 방법.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나 사물에 대한 인식이 미지의 대상에게로 전이됨으로써 미지의 대상을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 기존 낱말에 대한 축어적 의미가 전제되어야 함. 주지와 매체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그러면서도 둘의 결합이 절묘한 조화를 이룰수록 견고함이나 탄력감이 배가됨.

- (병치 은유) 은유를 이루는 두 개의 요소가 서로 대등하게 작용하는 상태를 유지한다. 순수하게 이질적인 두 요소를 병치시킨 비유 방식이다. 예) 환영처럼 나타나는 얼굴들 검은 가지에 매달린 꽃잎들

3) 환유

- 하나의 대상을 그 대상과 연계된, 즉 인접된 대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두 대상은 원인과 결과, 표지와 실체, 원료와 제품, 소유물과 소유자 등의 관계를 가진다.

예) 백의 → 백의민족,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 우산이 아이들을 가리킴.

3. 상징의 개념

- 보이지 않는 나머지 반쪽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보이는 반쪽'의 작용이 상징이다. 즉 표면에 드러나는 반쪽의 보조관념을 통해서 은폐된 반쪽의 원관념을 상상하고 유추하는 행위이다.

- 상징의 한끝에는 불가사의 세계, 즉 정신의 세계가 있고, 다른 한끝에는 가시의 세계, 곡 감각 물질의 세계가 있다. 상징은 이 같은 두 가지 요소 사이의 긴장과 상호 관계를 전제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의미의 생산이 이루어진니다. 정신과 감각의 세게를 연결하는 것이 상징이다.

- 상징은 그 자체를 통해서 관념을 생성한다. 이때 관념의 생성과정은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져보는 가시적이고 감각적인 차원과 연결된다.

- (은유와 상징) 은유에서는 유추되는 대상끼리 상호 의존성을 가지는 데 비해서 상징은 그 자체로서 독자성을 가지고 존재하므로 의미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은유에 비해 상징은 상대적으로 심상의 의미가 더 막연하고 암시적이며 다양성을 갖는다. 도 감각적 인상보다는 정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관념을 표상한다. 그리고 미치는 범위가 광범위하다. 예) 별, 십자가, 신호등, 님

4. 상징의 종류

- (개인적 상징) 자가 자신의 개성이나 창조적 능력에 의해 생성된 상징으로서 특정한 작품 속에서나 한 시인의 시 세계에서 특별한 내포적 의미를 갖는 상징. 시 자체의 문맥이나 시인의 독특한 경험에 의해 특별한 의미를 암시함. 예)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에서의 '국화'

- (원형 상징) 신화와 역사, 종교 등에서 수없이 되풀이되는 이미지나 모티브를 말함. 원형상징은 한 개인의 작품을 인류 문화의 보편적 지평 위에서 해석함으로써, 인간 심리와 문화의 공통성을 추출해 볼 수 있는 특성이 있음. 예) 물, 바다, 피, 하늘, 황금, 불빛

제8장 아이러니와 역설

1. 아이러니의 개념과 역사

- 아이러니는 진술이나 사건의 내부에 그와는 반대의 의미가 숨겨져 있다가 드러나는 현상을 말함. 아이러니의 진술에는 표면적으로 진술된 말의 의미 외에도 그와 반대되거나 전혀 다른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

- 아이러니는 일상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역설적 진리를 드러내기 위한 전력으로 사용됨. 아이러니는 축소, 과장, 비꼬면서 말하기, 반대로 말하기, 풍자, 말장난, 역설, 패러디 등의 진술이 있다.

- 아이러니는 모순과 대립의 균형과 종합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미적 경험을 가능케 한다. 아이러니는 현대시의 필수적인 자질이다.

2. 아이러니의 유형

- (언어적 아이러니) 말한 것과 실제로 의미하는 바가 다르게 진술된 방식이다. 비꼬면서 말하기, 반대로 말하기, 풍자, 패러디 등이 해당된다.

- (극적 아이러니) 주인공이 기대한 것과 그에게 실제로 이루어진 것 사이의 차이에 의해서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기대와 결과의 불일치, 상황과 행동의 불일치에서 효과를 얻는다. 예)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 (구조적 아이러니) 작품의 전체 구조에서 아이러니의 원리가 작용하는 겨우를 가리킴. 좋은 시의 조건으로 구조적 아이러니를 내세움. 예) 김소월의 '진달래꽃'

3. 아이러니와 역설

- 아이러니와 역설은 모순을 허용하는 진술이라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지만, 역설은 특별히 논리적인 모순을 통해 진리를 말한다는 특징이 있음. 시의 언어가 바로 역설의 언어임(C. Brooks). 평범한 것이 평범하지 않은 모습으로 마음에 비치도록 하는 것이 시의 목적이다(워즈워스).

- 역설과 아이러니는 모두 일상적인 상식을 배반하는 곳에서 진리가 성립한다는 것으로 보여주는 기법이다. 역설과 아이러니를 시적 언어의 핵심으로 파악하는 신비평 이론가들을 일상적인 언어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했다.

- (표층적 역설) 일상적인 논리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한 역설이다. 수식어와 피수식어 사이에서 발생하는 단순한 모순적 표현.

예) '산 송장', '눈뜬 장님', '소리없는 아우성', '찬란한 슬픔'

- (심층적 역설) 수사적 차원에서 벗어나 시 전체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역설이다. 존재론적 역설과 시적 역설이 있다. 존재론적 역설은 종교적 진리를 비롯하여 초월적인 진리가 담겨 있는 역설적 표현을 가리키고, 시적 역설은 시의 전체 구조가 역설을 통해서 진리를 전달할 때를 가리킨다.

예)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김소월의 시 '먼 후일'

제9장 인유와 패러디

1. 인유

- 시인이 작품을 창작하는 데 전통적인 문학의 소재나 문체, 양식 등을 빌려 와서 자기 작품의 개성을 강화하려는 경우, 이러한 기법을 인유라고 한다.

예) 서정주의 시 '춘향유문', 정지용의 조선시대 내간체 문투 사용, 백석의 판소리 구어체의 사용

2. 패러디

- 패러디는 인유의 극단적인 형태이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신을 가장 잘 반영한 문학적 장치이다. '전통의 제거를 통한 극복'이 아니라 '모방을 통한 극복'이다.

- 패러디의 범위는 원전 텍스트를 차용하거나 모방하여 의도적으로 변형하고 왜곡하는 기법이다. 패러디의 3가지 조건은 첫째, 원전 텍스트를 패러디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며, 둘째, 패러디의 의도와 목적이 있어야 하며, 셋째, 패러디의 의도와 목적을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숨겨야 한다.

제3부. 시의 주제

제10장 시와 자연

1. 자연이란 무엇인가

- 자연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눈다.

①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전 우주

② 단순한 개개의 자연경관

③ 식물이나 동물 같은 유기적 생명체

- (아리스토텔레스) "시는 자연의 모방이다."

2. 동서양의 자연관과 한국의 시의식

- 서양의 자연관은 인간소외, 물신주의, 환경문제 등을 이야기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지만, 동양의 자연관은 인간과 자연의 구별을 지양하는 일원론적 태도를 견지하여 왔다.

- 자연은 시에 무한한 의미를 주는 제재가 되었으며 아울러 시에서 질서와 조화 및 통일을 부여하는 대상이 되어 왔다. 자연은 시인에게는 창조 행위의 에너지원이 되었다.

- 한국의 시에서는 협소한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인간과 자연이 근원적으로 동일한 존재로서 생명의 율동을 구가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3. 자연 형상의 현대적 양상

- 자연은 현대시에서 단영 주류적인 형상으로 표현되어 왔다. 그만큼 자연은 모든 시대의 창작 경험 속에 광범위하고도 근원적으로 녹아 있는 소재이자 형상이었다. 형상화의 양상은 '보편적인 사랑', '형이상학적 관념', '자연 자체의 물질성' 등이었다. 이러한 경향의 대표적인 시인들이 '청록파'였다.

- 박목월의 자연은 훨씬 더 상상된 자연이다. 그의 시의 풍경은 자연과 인간의 진정한 혼융의 소산이 아니라, 주관적인 욕구에 의하여 꾸며 낸 자기만족의 풍경이었다. 그가 쓴 자연은 인간이 속세의 먼지를 털고 스스럼없이 찾아가서 그 속에 포근히 안길 수 있는 자연이다.

- 박두진은 자연을 자신의 관념이나 정서를 드러내는 근간으로 삼은 시인이다. 그의 정신과 이상을 구현하는 관념의 매개체이자 그것에 형식과 육체를 부여하는 대상이다. 즉 관념화된 자연이다.

- 조지훈은 물아일체의 생명적 자연관을 분명하게 보여 주면서, 생성과 소멸을 동시에 구현하는 생명시학을 드러내었다.

-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은 각각 주체의 관념이 투사된 궁극적 근원으로서의 자연, 역동적 생명의 원천으로서의 자연, 느림과 견딤을 바탕으로 한 유유자적의 자연을 노래하였다.

4. 생태적 사유로의 자연관의 변화

- 오늘날의 한국시는 모든 자연 사물이 인간과 함게 평등한 가치를 가진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자연 사물에 대한 상극과 배제보다는 상생과 포용의 세계관을 깊이 주문하게 되었다. 우리 시대의 자연 시편은 이러한 요소와 맥락을 구현하면서 새로운 생태적 사유를 열어 놓았다.

- 생태적 사유는 인간이 자연을 치유해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결속해가는 과정을 드러낸다.

- 우리 시사에서의 자연 형상은 문명 비판, 애니미즘 표출, 지배이념 전달, 전원 취미나 현실 반영의 알레고리적 표현 등으로 전개되어 왔는데, 최근에 이르러 자연 현상은 창조적 굴절을 보이면서 일종의 생태적 사유로 진화하였다. 자연에 자신의 관념을 투사하면서 자연을 창조하고 변용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즉 자연을 신성이 깃든 현장으로 승인하면서, 인간의 욕망 실현을 위한 '지원'으로 자연을 파괴해온 것에 대한 반성적 시선을 갖고 있다.

 

제11장. 시와 상상력

1. 시와 상상력의 개념

- 시에서 상상력의 중요성이 아주 큰데, 이는 시가 인간의 상상력을 증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원천이 되기 대문이다. 시는 있어야 할 것 혹은 있을 법한 것을 다룸으로써 무궁한 상상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시에서 상상력은 이미지를 생성하고 구체화할 수 있는 정신적이고 감각적인 힘 또는 어떤 현상이나 사물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내는 관계 생성의 힘을 가리킨다.

- 베르니스(J. Bernis)는 상상력을 감각적 재생물과 환상적 창조물의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바 있다. 이는 감각의 충실한 복사로서의 상상력과, 감각으로 포착할 수 없는 상상력의 두 가지이다.

2. 동서양의 상상력 이론

- 시인의 상상력은 현실적 합리성의 토대 위에 자신의 상상적 변형을 입혀 구체화된다. 이처럼 상상력은 외부의 사물과 만나는 동시에 그 경험 속에 자신을 이입시키는 동일성의 논리가 강하다. 동양의 상상력 이론은 이물관물(以物觀物)이다.

- 상상력의 활동도 언어에 기반을 두고 있고, 언어 없이는 상상력의 활동은 그 완전한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언어와 이미지는 공존하는 개념이다.

- 바슐라르는 시는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 체험과 함께 상상력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때 상상력은 단순한 재현 이미지를 유도해 내는 능력이 아니라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능력이다.

3. 상상력의 역할과 기능

- 상상력은 시의 세계를 무한히 확대하면서 창조적 기능을 다한다. 시에서의 상상력은 이미지를 생성하고 구체화할 수 있는 정신적, 감각적 힘을 말한다.

- 시적 상상력의 기능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세계, 즉 지각에 포착되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기능으로서 영감(靈感)이나 직관과 비슷한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경험을 표현하는 의식의 한 양식으로서의 기능이다.

- 시 창작 과정에서의 상상력은 이전의 경험이 한순간에 어떤 창조의 힘으로 나타나는 경우와, 상상력을 통일하려는 사유능력으로 나타나는 두 가지이다.

- 상상력은 외부의 정보를 수집하는 지각 과정, 수집된 정보를 가공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사고 과정, 저장된 정보를 되살리는 기억 과정의 세 가지에 모두 작용한다.

4. 시적 상상력의 다양한 양상

- 상상력은 시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 즐거움이란 언어적 감각에 대한 상상력이 주는 즐거움과 구체적 현실과 예술을 결속하게끔 하는 힘이 주는 즐거움이다. 여기에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촘촘한 사물들의 조직 과정을 경험하게 한다.

 

제12장. 시와 현실

1. 시에서 현실이란 무엇인가

- 시의 기능은 현실의 사실적 세부를 전달하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의미 있는 현실적 경험을 형상화하여 그것을 정서적, 미적으로 전달하는 데 있다. 따라서 현실의 구체적 경험이 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

- 대개의 시에서는 창작 주체의 나르시시즘(narcissism, 자기 자신에게 애착하는 일)이 창작의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동기로 작용한다. 독자들이 시를 읽는 일차적 이유도 시적 발화와의 흔연한 동일화에 있다.

- 나르시시즘과 동일화를 넘어 시적 발화나 수용이 타자들의 경험과 욕망을 포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거울로 사면이 이루어진 방 속에 갇힌 것처럼 무한 반사 운동을 하는 자기 회귀적 양식에 불과하다.

- 시에서 현실은 실제로 사실로서 부여되어 있는 것 또는 이상에 상대하여 그의 소재나 장애가 되는 일상적, 물질적인 것을 말하는 것으로 현실에 대한 시작으로 인해 우리는 근대적 주체의 '자기 표현' 양식으로 한정되어 이해되었던 시를 비로소 '현실성'의 차원으로 확장하여 이해할 수 있다.

2. 현실지향적 상상력의 역사

- (일제 강점기) 현실 지향의 참여 정신이 어느 시기보다 풍요롭고 적극적으로 전개되었다.

- (해방 후) 급속하게 현실 지향성을 잃어간다.

- (1960년대) 역사적 상상력은 분단 시대를 관통하면서 이른바 '민중적 서정시'라는 계열로 나타난다.

- (1970년대) 개발독재의 추진 과정에서 민중의 구체적 삶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 (1980년대 이후) 노동문학을 비롯한 현실주의 문학이 사회의 억압구조를 비판하고 사유하게 한다.

3. 시가 다루는 현실의 양상들

- 시는 자기가 사는 현실에 깊게 뿌리박고 있을 대 가장 좋은 예술작품으로 나올 수 있다. 구체적인 사람, 사물, 현상, 환경 등의 묘사와 서사를 통해 삶의 구체적인 양상에 근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구체성을 통한 이해는 추상화의 왜곡된 이해에서 오는 대상으로부터의 거리와 거기서 생겨나는 불안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 좋은 시는 사물이 지닌 사물감을 구체적으로 나타낼 수 있게끔 감각적이어야 하고, 그것이 지닌 연관들을 풍부하게 구현할 수 있을 만큼 포괄적이어야 한다.

4. 시와 현실의 관계

- 시는 거시적 권력의 억압 문제에서 미시적 권력의 억압 문제로 변화해왔다.

- 시와 현실의 관계는 우리를 둘러싼 현실 세게의 권력을 바라보는 관점과 관련되어 있으며, 권력의 부당함을 비판하고 타자들과 평화롭게 공존하고자 하는 열망을 표현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다.

제13장. 시와 사랑

1. 문학과 사랑

- 사랑이란 인간의 정서이자 사회 문화적 현상이기도 하다. 복합적인 사랑의 성격을 정서 및 이야기 차원에서 다루는 문학이 우리의 구체적인 관심사가 된다.

- 인간끼리 공유하는 정서나 의지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것의 하나가 사랑이라면, 사랑을 주제로 한 서정시에 우리의 관심이 향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 애정이 심리적 차원의 개념에 가깝다면, 연애는 근대적 개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적극적 행위 개념을 포괄한다. 사랑이란 근대적 개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서 및 상황을 아우르며, 대상을 향한 가장 따뜻하고 바람직한 관계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2. 연애시의 특성

- 온전한 의미에서의 상호 소통적인 사랑은 역설적으로 연애시의 주요 모티브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사랑이 외롭고도 절실한 목소리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연애시의 영역에서는 거의 절대적이다.

- (연애시의 특성) ① 주요한 모티브가 사랑의 결여상황(이별)에서 발생한다. ②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인 기다림과 그리움을 주조로 대상을 긍정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③ 연애시의 모든 대상이 동심원(同心圓)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폭넓은 상징적 의미를 머금고 있다.

3. 연애시의 근대적 양상

- (근대 초기) 임의 상실과 그 회복에 대한 열망을 노래한 대표적 시인은 김소월, 한용운, 이상화이다.

- 한용운의 연애시는 형이상학적인 상징의 층위와 애절한 연애시적 문법이 탁월하게 결합하여 우리 시사에 남았다. 동심원적 해석이 강하다.

- 윤동주는 우리 시사에서 서정시가 고백체 예술의 가장 대표적인 양식임을, 진정성 있는 언어로 보여준 사례이다.

- 박인환은 철저히 개인적이고 일상적이고 감각적인 의식의 결과를 담아내고 있다. 즉 박인환의 연애시는 뜨거움과 열정의 사랑이 아니라, 애잔한 그리움과 서늘한 폐허감을 모태로 하고 있다.

- 김종삼은 한국 현대시의 역사에서 가장 순도 높은 순수시를 일관되게 쓴 과작의 시인이다.

4. 오늘날, 연애시는 무엇인가

- 근대적 연애시들은 이별이라는 정황에 처한 근대적 개인들을 위안하고 그들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효용성을 띠고 있다.

- 연애시의 유통 회로는 상실감과 그리움을 정서적으로 공유하는 이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창작되고 유통된다. 이것이 연애시의 대중적 전파력을 보장해주는 일차적 원인이다.

- 근대적 연애시의 양상들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욕망의 형식으로서, 또한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담아낸 노래로서 더욱 그 위상을 누려갈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사랑이 얼마나 보편적인 인간의 행위이자 정서인지를 알려 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제4부. 시 읽기의 배경과 방법

제14장. 시의 역사

1. 시에 대한 역사적 개관

- 한때 시가 문학을 대표할 수 있었던 것은 운문이 지배하던 시대가 근대 이전까지 길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쇄문화가 보편화되기 이전까지 입에서 입으로 기억을 전수하던 구술문화의 시대가 오래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때는 반복적 리듬이 강조되었다.

-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문자 사용에 민주화가 진행되었고, 활자 중심의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눈으로 읽는 문화가 발달하였고, 이에 따라 운문의 시대가 저물고 산문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 산문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서사시는 소설로, 극시는 희극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시의 영토가 서정시만으로 축소되게 되었다. 이로써 근대문학이 보편화된 시대는 곧 시가 서정시로 축소되게 되었다.

- 시가 서정시로 축소되면서 낭만주의가 번창하였고, 시는 개인의 정서와 감정을 표현하는 서정시로 자리 잡았다. 근대시에서는 행갈이와 연 구분, 구두점 표기를 비롯한 시각적 형태가 중요해졌고, 시의 길이가 책을 펼쳤을 대 한눈에 볼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조정되었다. 이와 동시에 구술문화의 잔재라고 할 수 있는 후렴구의 반복이라든지 정형화된 리듬이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 낭만주의 시대에는 문학적 상상력이 중시되었고, 문학적 상상력은 일시적으로나마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시공간을 경험하게 만드는 데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 낭만적 상상의 세계로 도피하지 않고 현실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두는 시정신이 대두하는데 이것이 리얼리즘이다. 그런데 짧은 서정시에서 현실을 재현한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시에 이야기를 담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 서정시가 주류로 자리 잡을 무렵, 시에서 감정을 배제하고자 하는 모더니즘 시 운동이 대두하였다. 이를 이미지즘으로 부르는데 간결하고 정확한 감각적 이미지로 감정의 표현을 대체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의미를 전달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하였다.

-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으로 시의 언어에서 의미를 전달하는 단순 의사소통의 기능이 배제되고 언어를 거부하는 언어, 시를 부정하는 시 같은 자기 부정과 자기 파괴의 해체적 욕망이 현대시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2. 근대시의 유형

- (낭만주의) 근대시의 기본적인 모델이 마련되었다. 행과 연이 시각적으로 구별되고 청각 중심의 전통적인 리듬은 영향력을 잃게 되었다.

- (리얼리즘) 1925년에 결성된 최초의 사회주의 문학단체인 카프(KAPE) 와 1970~80년대에 활동한 민중시인들에 의해서였다. 김기진, 박세영, 임화, 이용악, 오장환, 백석, 신동엽, 김수영, 고은, 신경림, 김지하, 박노해, 백무산 등

- (모더니즘) 시가 언어의 예술이라는 자각을 가짐. 언어를 감정과 사상 표현의 도구에서 해방시킴. 차가운 도시적 감수성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감정 표현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이미지 중심의 감각적 표현을 중시함. 박인환, 김수영, 김춘수, 황동규, 오규원, 정현종, 황지우 등

- (포스트모더니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 소통 가능한 수준에서 언어의 비유적 사용, 시적 언어의 상투성 등을 제도화된 편견으로 간주하여 배제하기 시작함. 시의 장르적 경향을 무한히 확장시킴. 김언희, 이수명, 이장욱, 황병승 등

제15장. 시 읽기의 방법

1. 시 읽기의 조건

-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 장르의 특징에 맞게 읽는다는 것이다. 시에서는 의미가 모호하게 전달된다. 시에서는 언어를 통해 소통할 수 없는 것을 전달한다.

- 시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언어의 시적 사용법에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비유적 의미, 숨겨진 의미까지 읽어내야 한다.

- 시를 시답게 읽는다는 것은 아무리 의미를 고정하려고 해도 결코 고정되지 않는 부분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언어를 통해서 경험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을 '긴장(tension)'이라고 한다.

2. 시 읽기의 방법

- 시읽기에는 거시적인 읽기, 미시적인 읽기, 맥락적인 읽기가 있다. 거시적인 읽기와 미시적인 읽기는 시의 내부에서 의미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고, 맥락적 읽기는 시와 그 외부적 맥락(시인의 삶, 시대적 배경, 시인의 현실의 문제)을 연결해서 읽는 행위를 뜻한다.

- (거시적 읽기) 제목, 형식, 화자, 대상 등을 수집하면서 읽는 방식이다.

- (미시적인 읽기) 미세한 언어의 표현에 주목하면서 읽는 것이다. 언어적 표현, 비유적 표현, 의미의 복합성 등에 유의하여 읽는다.

- (맥락적 읽기) 시의 의미에 영향을 주는 주변적 맥락을 고려하면서 읽는 것이다. 시인의 전기적 삶, 시인이 속한 집단의 미학적 경향이나 맥락, 사회문화적 맥락 등이 그것이다.

- 끝 -

[출처] 김신정 외 - 『현대시론』|작성자 느티나무/시가있는 마을 블로그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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