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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왕자

루스드라 2018. 12. 2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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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별이 왕자

이성교

  꽁꽁 얼어붙었던 땅이 녹으면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커지고 먼 산에 아지랑이가 가물거리기 시작합니다. 산허리에 숨어 핀 진달래의 붉어진 얼굴에서도 길가에 휘늘어진 개나리 노오란 치마 자락에서도 봄은 설이 곁으로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혼자서 집을 보던 설이는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이웃에 사는 돌이랑 함께 가자고 했을 텐데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혼자 올랐습니다.

  뒷동산에는 파아란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설아, 안녕

  새싹이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설이는 새싹의 인사에도 별로 기분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봄바람이 솔이의 볼을 간지르며 지나갔습니다.

  설이는 아직 잠이 들어 있는 잔디 위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따스하게 내리쬐는 봄볕이 데워 놓은 잔디밭은 무척이나 포근했습니다.

  설이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파아란 하늘에는 흰구름 한 덩이가 떠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설이의 눈에는 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합니다.

  몇 년 전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말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나가 버린 오빠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날들을 눈물로 보냈는데도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았나 봅니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 속으로 오빠의 모습이 더욱 또렷해집니다.

  ‘별이 오빠, 그 동안 잘 지냈어? 난 이제 6학년이 되었어. 오빠도 알고 있겠지?’

  ‘오빠, 정말 미안해. 사실 난 오빠가 죽기를 바라 고 한 말이 아니었어.’

  설이는 오빠가 죽은 것이 자기의 말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설이는 오빠와 가장 친하게 지냈지만 가끔 싸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힘이 약한 설이는 오빠를 당하지 못하고 얻어맞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화를 삭이지 못하고 오빠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오빠가 사고를 당하고 나니 자기의 못된 생각 때문에 오빠가 죽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설이야, 너무 괴로워하지 마. 오빠는 원래 별나라 왕자였단다. 그래서 내 이름이 별이지 않니? 너와 헤어지는 것은 하늘의 뜻이었어. 난 원래대로 별나라 왕자가 된 거야. 내 말을 못 믿겠으면 눈을 들어 나를 봐.”

  오빠의 말소리에 고개를 든 설이는 눈이 휘둥글 해 졌습니다. 머리에는 빨간 별이 달린 왕관 모양의 모자를 쓰고 어깨에는 노란빛이 반짝이는 갑옷을 입은 오빠가 서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병원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던 의젓한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붕대를 감은 머리와 어깨, 가슴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모자와 옷을 입고 있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오빠, 별이 오빠

  설이는 너무나 반가워서 오빠의 가슴으로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빠는 설이가 다가간 만큼 거리를 두고 웃고 있었습니다.

  “설이야, 오빠는 이렇게 별나라 왕자가 되었으니 너무 괴로워하지 마. 너의 눈물방울 때문에 오빠는 더 자랄 수가 없단다. 지금의 내 모습을 봐라. 너와 헤어질 때와 똑같지 않니? 이제 오빠는 빨리 자라서 어른이 되어야 해. 그래야 별나라 왕이 될 수 있거든.”

  설이는 오랜만에 마음이 후련했습니다. 보고 싶었던 오빠가 별나라 왕자가 되어 의젓한 모습으로 설이 곁에 있으니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던 오빠는 설이가 다가가기만 하면 그 만큼씩 달아나 있습니다.

얼마를 그렇게 쫓아가던 설이는 더 이상 오빠를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검푸른 강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빠는 집체만한 파도가 넘실대는 강물 위에 서서 돌아가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그런 오빠의 모습을 지켜보던 설이도 강을 건너기로 마음먹고 오른발을 한 발짝 물속으로 내딛었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설이야, 왜 여기서 이러고 있니? 어서 일어나 거 라.”

  마침 그 곳을 지나가시던 이웃집 돌이 아버지께서 설이를 흔들어 깨우셨습니다.

  “, 오빠를 생각하다가 잠이든 모양이구나. 이제 그만 잊어버려라. 너의 오빠는 별 나라 왕자가 되었을 게야.”

  돌이 아버지께서는 설이가 꿈속에서 오빠로부터 들은 이야기와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죠? 돌이 아버지. 우리 오빠는 별나라 왕자님이 되었겠죠?”

  설이는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오빠, 이제 울지 않을게. 꼭 훌륭한 별나라 왕이 되어야 해.’

  설이는 꿈속에서 부탁한 오빠의 말을 떠올리며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서쪽 하늘 자락에 별 하나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전남문학 334(1998. 여름호)-

 

 

 

 

 

내가 담임하던 아이가 하교길에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갔다. 그 때 머리에 붕대를 감고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은 참 평안해 보였다. 그 아이의 이름은 '성진(별성, 별진)' 이었다. 그 모습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그 아이가 떠나고 여러 해가 지난 후 작품으로 지면에 올리고 나니 나의 짐이 덜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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