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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의 비밀

루스드라 2021. 11. 1. 18:16

(동화)

봄꽃의 비밀

이성교

 

차창 밖으로 아빠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누나 조안이와 강물이는 그런 아빠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힘껏 흔듭니다. 기차가 미끄러지듯이 플랫폼을 빠져나가자 아빠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서야 누나 조안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실감합니다.

그런 누나와는 상관없이 강물이는 무척 즐거운 표정입니다. 차창에 비치는 자기의 얼굴을 보면서 온갖 표정을 짓습니다. 웃다가 갑자기 찡그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대다가 흥얼거리기도 합니다. 강물이가 신바람이 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원하고 원하던 할아버지댁에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누나 조안이도 아빠와 함께 기차에 오를 때까지는 들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빠가 내려가시고 기차가 출발하자 문득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옛날에는 그곳에서 서울까지를 한양 천 리라고 할 만큼 먼 거리였다는 말이 떠오르자 잠시 불안한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고속열차를 타고 2시간 반이면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빠가 일러주신 말씀을 차분하게 떠올리며 정리를 해 봅니다.

강물이는 지난해 가을에 보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후부터 설날이 오기를 손을 꼽으며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설에도 내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설을 앞두고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길이 막혀버린 것입니다. 강물이는 속이 상했지만 어쩔 수가 없는 현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한 것이 아니라 봄 방학을 기다리기로 합니다. 기다리던 봄 방학에도 코로나로 막힌 길은 열리지 않습니다. 그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강물이는 더는 조를 수가 없어 냉가슴을 앓습니다. 이번에도 누나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세 살 위인 누나 조안이는 동생 강물이를 무척 잘 챙겨줍니다. 강물이가 선교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2층 방에 있던 누나 조안이는 쉬는 시간이면 강물이가 생활하고 있는 1층 방으로 가서 보살폈습니다. 그때부터 강물이는 누나를 엄마처럼 따랐습니다. 그래서 누나 조안이도 강물이의 부탁이라면 잘 들어주는 편입니다. 모든 일을 매우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는 강물이는 한번 정한 일은 꼭 해내고 마는 끈질긴 성격입니다. 그래서 누나에게 도움을 청하고 나서는 아예 만날 때마다 칭얼대며 귀찮게 합니다.

자기 주도적 체험 기간이 있는데 그때 가면 되겠네.”

누나, 그게 뭔데.”

견디다 못해 툭 던진 누나의 말에 강물이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은 것처럼 생기가 돌면서 착 달라붙으며 채근을 합니다.

아차, 너는 2학년이라 안 되겠다. 3학년 이상만 해당하거든.”

누나 조안이와 강물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새싹이 나고 나무에 물이 오르는 봄이면 3일간의 자율 체험 기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 2학년은 학교에서 선생님과 활동을 합니다. 그 말을 들은 강물이는 금방 시무룩합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틈만 나면 누나와 함께 가면 되지 않느냐면서 조릅니다. 실은 누나 조안이도 시골의 할아버지댁에 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누나는 설득력이 뛰어납니다. 4학년 겨울방학 때에는 유엔 청소년 환경총회에 뽑혀 토론에 참여했습니다. 그만큼 모든 일에 매우 적극적이며 논리적입니다. 누나 조안이는 마음을 정하자 해결 방법을 생각하면서 계획을 세웁니다.

먼저 담임 선생님께 의견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구합니다. 그리고 보호자의 허락을 받아 자세한 계획서를 내면 가능할 수 있다는 대답을 듣습니다. 희망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다음으로 자신들의 말을 늘 긍정적으로 들어주시는 아빠와 의논합니다. 이번에도 아빠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기특하다면서 좋은 생각이라고 격려를 해주십니다. 아빠의 칭찬까지 받게 된 누나 조안이는 매우 당당합니다. 그래서 엄마도 누나 조안이의 논리를 당하지 못하고 마침내 허락하십니다. 솔직히 말하면 엄마도 걱정은 되지만 조안이를 믿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할아버지와 만나기로 한 역은 아빠 엄마와 함께 몇 차례 내렸던 곳입니다. 할아버댁은 그곳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 정도를 더 가야 하는 시골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늘 승용차를 타고 마중 나오셨습니다. 이번에도 할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역에서 내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조안이는 늘 그랬듯이 하나님께서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해주실 것을 믿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자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눈을 뜨자 강물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누나 조안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항상 밝게 웃던 누나의 심각한 표정이 강물이의 눈에도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누나가 눈을 뜨며 씽긋 웃자 강물이의 얼굴은 금세 밝아집니다.

강물이는 마냥 즐겁습니다. 누나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싱글벙글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불쑥 말을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잘살고 있나?”

다섯 살 때 뜬금없이 어른스러운 말을 해서 웃음바다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남다릅니다. 이번에도 강물이의 속마음은 2년이나 뵙지 못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려오기를 고집한 것입니다

누나, 누나는 어떻게 영어를 그렇게 잘해?”

누나의 웃는 모습을 본 강물이는 이번에는 툭 던지듯이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묻습니다. 누나는 강물이의 의외의 질문에 자기의 경험을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영어를 잘하려면 첫째 부끄러움이 없어야 해. 틀리더라도 창피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 어차피 우리나라 말이 아니니까 라고 생각하면 돼

정말 강물이는 영어를 잘하는 누나가 부러웠나 봅니다. 이제까지의 태도와는 다르게 진지한 표정으로 누나를 쳐다봅니다.

둘째로는 대담해야 해. 영어를 하는 외국인들을 만나면 무조건 말을 걸어야 해. 말이 통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 사람들도 우리 말을 모르니까.”

이 말을 들은 강물이는 누나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듯한 표정입니다. 그것을 눈치챈 누나는 마지막 마무리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뻔뻔해야 해. 말이 막히면 만국의 공통언어를 사용하면 되거든. 손과 발까지 사용해서 표현하면 대부분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어.”

누나의 이야기를 들은 강물이는 누나가 더욱 위대해 보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누나와 같이 특별한 사람이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시무룩해집니다.

강물아, 너는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첼로를 4시간이나 연주하고도 싫증이 나지를 않니?”

, 나는 첼로 연주만 하면 신바람이나.”

누나의 말에 강물이의 얼굴은 금방 생기가 돕니다.

강물아, 누나가 영어를 좋아하듯이 강물이는 음악을 좋아하는 거야. 그것이 하나님께서 너에게 주신 재능이라고 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각각 맞는 재능을 하나씩 주시는 거야. 누나는 고사리 같은 작은 손가락으로 커다란 첼로를 4시간이나 연주하고도 지치지 않는 너의 모습이 부러워.”

강물이는 누나의 칭찬에 기분이 무척 좋아집니다. 강물이는 유치원 때 누나가 바이올린을 배우는 학원을 따라갔습니다. 그때 첼로를 보고 시작한 것이 삼 년째입니다. 그동안 알아주는 전국 콩쿨 대회에서 1위를 두 번이나 할 정도로 탁월한 음악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나 조안이의 말은 진심입니다.

기차는 미끄러지듯 철길을 달리고 있습니다. 차창 밖으로 하나님이 그려놓은 그림들이 펼쳐집니다. 차창이 스크린이 되어 활동사진처럼 스치며 지나갑니다. 파란 하늘에 피어 나는 구름이 참 아름답습니다. 먼 산의 나무들도 손을 흔듭니다. 들판에서는 파릇파릇 돋아난 새싹이 싱그러워 보입니다. 그런 모습을 누나와 강물이는 말없이 바라봅니다. 아빠 엄마와 함께 할 때는 느끼지 못한 감정입니다.

조안이와 강물이는 차만 타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잠이 듭니다. 그래서 차창 밖의 풍경이 새삼스럽게 다가온 것입니다. 그런데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창 너머 풍경에 눈이 시리면서 자꾸 눈꺼풀이 잠깁니다. 엄마가 허락하면서 가장 염려하셨던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엄마는 아침에 집을 나설 때도 자지 말라고 신신부탁을 하십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자꾸 조안이를 쫓아옵니다. 그런데 그것이 환상으로 머릿속을 어지럽히더니 자꾸 눈꺼풀이 무거워집니다. 강물이는 이미 고개를 떨구고 있습니다. 누나 조안이도 끝내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립니다. 기차는 그런 그들의 일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철로 위를 고속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띵동 일어나, 그만 일어나…….”

누나의 핸드폰에서 알람 소리가 다급하게 울립니다. 그러나 입가에 미소까지 머금고 잠에 취한 누나는 듣지를 못합니다. 아마 할아버지를 만나는 꿈을 꾸나 봅니다. 차내 방송에서는 도착하는 역을 안내하는 방송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기지개를 켜고 내릴 채비를 합니다.

얘야, 너 내려야 할 역 아니니?”

계속 울리는 알람 소리에 앞자리에 계신 할머니께서 누나 조안이를 흔들어 깨웁니다. 기차가 출발하기 전 아빠가 자리를 잡아주고 당부하고 내려가시는 모습을 지켜보신 할머니께서 혹시나 하고 깨운 것입니다. 깜짝 놀라며 눈을 뜬 누나 조안이는 두리번거립니다. 할아버지께서 기다리시기로 한 역이름이 눈에 들어옵니다. 옆자리의 할머니께는 건성으로 감사 인사를 하고 강물이를 깨웁니다.

드디어 기차는 할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역에 멈췄습니다. 누나 조안이는 강물이를 도와 가방을 챙깁니다. 평온을 찾은 누나 조안이는 할머니께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한 후 강물이의 손을 잡고 기차에서 내립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프렛폼까지 들어오셔서 조안이와 강물이가 내리는 계단 앞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기차역을 나와 할아버지 차를 탄 누나 조안이와 강물이는 한참을 신나게 떠들더니 갑자기 조용해집니다. 긴장이 풀리니 또 잠에 빠진 것입니다. 한 시간쯤 지나자 할아버지댁 앞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 꽃님들이 아직도 잠을 자고 있네.”

먼저 내린 강물이가 불쑥 던진 말입니다. 누나가 이성적이라면 강물이는 감성적입니다. 할아버지댁을 방문할 때면 대문 밖 담장 밑 화단에는 여러 가지 꽃들이 환하게 웃으며 반겨줍니다. 그런데 마른 꽃나무 뿌리만 있는 화단을 본 강물이의 눈에는 아직 꽃나무들이 잠에서 깨지 않은 것으로 보인 것입니다.

대문 앞에 서서 기다리신 할머니께서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강물이는 이제 뾰족하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잔디 마당을 달립니다. 강물이는 할아버지댁에 오면 그렇게 마음껏 뛸 수 있어서 좋습니다. 아파트에서는 뛰기는커녕 챌로도 마음 놓고 연주를 할 수 없을 만큼 조마조마합니다. 그래서 속이 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댁은 그런 걱정이 없습니다. 방안에서는 물론 마당이나 텃밭을 마구 휘젓고 다닐 수가 있습니다.

시골에서의 아침은 한결같이 기분이 좋습니다. 재잘거리는 새소리에 눈을 뜨면 창틈으로 들어온 햇살에 눈이 부십니다. 문밖을 나오면 따스한 봄바람이 볼을 간지럽히고 코끝을 스치는 흙냄새가 매우 상쾌합니다. 그렇지만 그것보다도 더 기분 좋은 것은 부엌 방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입니다. 유난히 집밥을 좋아하는 강물이의 입에서는 벌써 군침이 돕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 할머니께서는 장날이라고 하시면서 장을 보러 간다고 하십니다. 그 말을 들은 누나 조안이는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함께 가겠다고 합니다. 다른 때 같으면 먼저 앞장섰을 강물이는 할머니와 누나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듯 쳐다보기만 합니다. 그것을 눈치챈 누나 조안이는 장날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강물아, 시골에서는 5일마다 정해 놓은 날에 장이 열리고 있어. 그래서 5일장이라고 부르기도 해. 정식 이름은 5일마다 정기적으로 열리기 때문에 정기시장이라고 해. 지금은 전통시장이라는 말을 많이 써.”

누나의 설명을 들은 강물이는 할머니보다 먼저 앞을 섭니다.

그런데 누나, 장 보러 간다는 말이 뭐야?”

, 그 말은 장에 가서 물건을 둘러보고 자기가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을 말하는 거야

강물이는 장 보러 간다는 말이 궁금해서 머뭇거리고 있었나 봅니다. 누나의 자세한 설명을 들었지만 강물이가 알고 싶은 궁금증이 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나 뒤를 따라가면서 물은 것입니다.

장 입구에는 목사골 전통시장이라고 크게 쓰여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께서 자판을 벌려놓으셨습니다. 아직 마수걸이도 못 했다고 하십니다. 도시에서 본 시장과는 사뭇 다르게 너무나 한산합니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자 통로를 중심으로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 서 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는 손주들의 눈에 비칠 초라한 시장의 모습이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있을 것은 다 있고 없는 건 없다고 하시며 멋쩍게 웃으십니다. 할머니 말씀대로 온갖 물건들이 잘 진열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를 않습니다.

할머니께서는 20년 전까지만 해도 장날이면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기도 하지만 만남의 장소였다고 합니다. 인근에 있는 사람들은 특별히 살 물건이 없어도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소식도 들을 수 있어서 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옛날의 추억을 잊지 못하거나 차가 없어 버스를 타고 오시는 주인 또래의 손님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장날마다 상점을 닫을 수가 없어 문을 열고 있지만 오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상점에서 물건을 파는 주인도 나이가 많아 보입니다. 어떤 가게 앞에는 의자에 앉아서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물건을 고르고 있습니다. 손님이 없는 다른 가게에도 빈 의자가 몇 개씩 놓여 있습니다. 장터를 찾는 손님들이 대부분 주인 또래의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라 그렇게 앉아서 물건을 고르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농협 앞 도로 옆에는 꽃차가 서 있습니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누나 조안이와 강물이는 그 꽃차를 바라보자 장터를 돌면서 심드렁했던 마음이 풀렸습니다. 할머니의 뒤를 따라가던 강물이는 뒤통수가 간지러워 자꾸 꽃차를 돌아다 봅니다. 그때마다 꽃들이 환하게 웃으며 손짓을 합니다.

누나, 아까 봄꽃 참 예쁘지? 우리 그 봄꽃 사다가 주차장 앞 꽃밭에 심자.”

집으로 돌아온 강물이는 누나 조안이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그제야 누나는 강물이가 자꾸 꽃차를 돌아보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께는 비밀로 하자.”

누나는  할아버지댁에 올 때마다 항상 즉흥적으로 깜짝쇼를 준비해서 공연을 했던 일을 떠올라 제안을 합니다.  그래서 둘은 봄꽃 비밀작전을 하기로 합니다. 마침 할아버지는 뒷밭에서 땅을 일구시고 할머니께서는 시장에서 산 물건들을 손질하십니다. 비밀작전을 할 수 있는 참 좋은 기회입니다.

누나 조안이와 강물이는 용돈을 털어서 다시 농협 앞 꽃차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꽃차는 아직 그곳에 있습니다. 장터 안 상점과는 달리 사람들이 제법 모여있습니다. 누나 조안이와 강물이는 각자 마음에 드는 봄꽃 몇 가지를 골라 서 가지고 왔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하시던 일에 집중하시느라 아직 둘의 비밀을 눈치채지 못하십니다. 조심스럽게 꽃삽을 챙기고 패트병에 물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대문 밖으로 나와서 담장 밑 꽃밭에 봄꽃을 심고 물을 주었습니다. 갑자기 꽃밭이 잠에서 깨어나면서 주변이 환해집니다.

여보, 당신이 대문 밖 꽃밭에 봄꽃 사다가 심은 거요?”

느닷없는 할아버지의 물음에 할머니께서는 하던 일을 멈추고 밖으로 나오십니다. 할머니께서는 우리 동네에 꽃씨를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한번 알아봐야겠다고 하십니다.

그날부터 할아버지는 이웃분들과 지나는 사람들을 만나서 봄꽃을 심은 사람을 찾았습니다. 하루가 지나도 봄꽃을 심은 사람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께서는 담벼락에 다음과 같이 써 붙이셨습니다.

봄꽃을 심으신 이웃님 감사합니다. 이웃님의 따뜻한 이웃사랑의 마음이 꽃 마음으로 피어납니다. 누구신지 알 수 없어 이렇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면서 누나와 강물이는 참 곤란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분간 비밀로 하고 지켜보기로 합니다.

그 꽃 어제 손주들이 심습디다.”

오후가 되자 마을 공부방 돌봄을 마치고 퇴근하시던 한문 할아버지께서 담벼락에 붙은 글을 보시고 할아버지를 불러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손주 녀석들이 귀엽기도 하더니만 마음 씀이 참 곱다고 칭찬까지 하십니다.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할아버지에게도 손주들만 모르는 비밀이 하나 생겼습니다. 속아도 기분이 좋은 비밀입니다. 집 안으로 들어오신 할아버지는 누나 조안이와 강물이를 꼭 껴안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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