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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을 떠난 막내 삐아기

루스드라 2023. 10. 12. 16:20

동화

유학을 떠난 막내 삐아기

이성교

한적한 시골집 마당 구석에 자리 잡은 닭장 곁을 지나던 따사로운 봄볕이 닭장 안을 기웃거립니다. 어미 닭이 품고 있는 알에서 노란 병아리가 깨어나고 있습니다.

톡 톡” “틱 틱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 나오려고 내는 소리입니다. 어미 닭이 밖에서 부리로 껍질을 조심스럽게 쪼면 안에 있는 병아리도 소리를 내어 제 부리가 있는 위치를 어미 닭에게 알려줍니다.

부리가 개나리 꽃봉오리처럼 예쁘네

병아리가 깨어나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햇볕이 속삭이듯이 중얼거립니다.

얼마 동안을 어미 닭과 병아리가 안팎에서 쪼아대자 겨우 부리가 나올 정도의 구멍이 생깁니다. 그 구멍을 뚫고 개나리 꽃봉오리처럼 앙증맞은 부리만 밖으로 내놓은 병아리가 가는 숨을 깔딱거립니다.

어미 닭과 병아리가 함께 온 힘을 모아 깨어난 병아리는 모두 열 마리입니다.

병아리 배가 불룩한 것이 마치 외계인 닮았네

갓 깨어난 배불뚝이 햇병아리의 모습을 보고 햇살이 또 중얼거립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듯 머리를 흔들며 어미 닭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더욱 우스꽝스럽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어미 닭의 꽁무니를 아장아장 따라다니는 병아리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어미 닭의 품에 있는 동안에 눈이 뜨였나 봅니다. 어미 닭이 쪼아놓은 먹이 주위에 몰려들어 톡톡 쪼는 모습이 무척 귀엽습니다.

노란 병아리가 앙증맞게 생겼네.”

닭장 앞을 지나가던 어린 고양이가 처음 본 병아리에 호기심이 생겨 기웃거리며 중얼거립니다.

애들아, 어서 이리 들어오너라.”

그것을 본 어미 닭은 병아리들을 불러 재빨리 자기 품속으로 숨깁니다. 그리고 작은 눈을 쇠구슬같이 최대한 똥그랗게 부릅뜨고 목의 깃털을 바짝 세웁니다. 마치 달려들기만 하면 목숨을 걸고 마구 쪼아댈 듯 무서움이 느껴집니다. 그 기세에 눌린 어린 고양이는 꼬리를 쳐들고 슬금슬금 가려던 길을 갑니다.

햇볕이 점점 열기를 더해가면서 땅이 서서히 달궈지기 시작하자 병아리들도 깃털이 나고 날개를 퍼덕거리며 서로가 힘겨루기로 서열을 정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모습을 본 어미 닭은 무척 대견스러워하면서도 불안합니다. 그래서 병아리들을 모두 모았습니다.

오늘은 이 어미가 너희들에게 할 말이 있어서 모이라고 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

는 말을 잘 들어라.”

이제까지의 모습과는 다른 어미 닭의 모습을 본 병아리들은 말없이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 사랑하는 우리 삐아기들에게 유언을 하려고 한다.”

엄마, 유언이 뭐예요?”

어미 닭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막내 삐아기가 어리광을 부리며 불쑥 나섭니다.

그것은 알 것 없고,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꼭 지켜야 한다.”

막내에게도 쌀쌀하게 대하는 엄마의 모습에 모두 주눅이 듭니다. 그래서 아무도 대꾸하지 못하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첫째, 어미가 먼저 가더라도 아무 곳이나 돌아다니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열

심히 공부해야 한다.”

엄마, 어디 가시는데요? 우리도 함께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어미 닭은 큰언니 삐아기의 묻는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다음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둘째, 복날 없는 나라로 유학 가서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귀여운 막내 삐아기를 잘 돌봐 주어라. 이상!”

어미 닭은 점점 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합니다. 삐아기들은 복날이나 유학이라는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화나는 일이 있나 보다 생각하고 흩어집니다.

어미 닭은 언니들과 다른 막내 삐아기가 마음이 쓰여서 마지막으로 막내를 특별히 부탁합니다.

막내 좀 봐. 옷이 우리와 달라. 히끄무레하고 우중충해.”

발도 우리와 달라. 납색이야.”

다리도 짧고 발톱과 발바닥도 미색이야.”

머리를 봐 왕관을 썼어. 자기가 왕이라도 되려는가 봐.”

턱을 봐 염소처럼 수염까지 달고 있어.”

얼레리꼴레리, 하하하 하, 호 호호호

언니들은 자기와 다른 막내 삐아기를 보며 심심할 때마다 놀립니다. 어미 닭은 그런 막내 삐아기가 안쓰러워서 더 관심을 쏟습니다. 그럴수록 질투가 난 언니들은 막내 삐아기를 더욱 괴롭힙니다.

엄마, 언니들이 또 괴롭혀요.”

언니들이 괴롭힐 때면 막내 삐아기는 엄마가 들으라고 큰 소리로 울면서 어미 닭에게 달려갑니다. 그럴 때마다 어미 닭은 말없이 막내 삐아기를 꼭 껴안으며 꼭 유학을 떠나라고 일깨워줍니다.

점점 더워지는 날씨로 병아리들이 입을 벌리고 숨을 쉬어야 할 만큼 무더운 초여름입니다. 그 무렵이 되자 삐아기들도 제법 어미 닭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꽁무니에 꽁지가 나면서 횟대에 날아올라 어미 닭 곁에서 잠을 잡니다. 언니들은 메추리알보다 조금 큰 알을 하나씩 낳습니다.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날이 밝으면 떠나거라.”

초복이 다가오고 있는 어느 날 밤 어미 닭은 경고하듯이 막내 삐아기를 다그칩니다. 그 말을 들은 막내 삐아기는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언니들에게 따돌림을 받을 때는 정말 유학이라도 멀리 떠나고 싶었지만 너무나 두렵습니다.

간밤에 진수성찬이라도 잡수셨나. 장차 왕이 되실 귀하신 몸이 입맛이 없나 봐.”

뜬 눈으로 날을 샌 막내 삐아기는 아침먹이를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막내 삐아기의 마음을 알지 못한 언니들은 놀려대며 경쟁하듯 먹이를 쪼아먹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막내 삐아기는 언니들과 함께 지낸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깨닫습니다. 따돌림을 당해도 좋으니 언니들과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검은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한 가운데 버려진 듯한 두려움과 외로움이 몰려옵니다.

넌 왜 나가지 않고 이러고 있어. 청소하게 너도 잠깐 나가 있거라.”

할아버지의 말씀에 놀란 막내 삐아기가 정신을 차려보니 닭장 안에는 혼자 남아 있습니다.

막내 삐아기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밖으로 나오니 텃밭 구석에서 어미 닭과 언니 삐아기들이 놀고 있습니다. 그날따라 그런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입니다.

엄마아~, 언니이~”

막내 삐아기는 반갑게 소리치며 한달음에 달려갑니다. 그때 앞에서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도둑고양이와 눈이 마주칩니다.

삐이 아아악, 푸드득

너무나 놀란 막내 삐아기는 횃대에 오르던 때보다 더 큰 힘으로 박차고 올라 날개를 펼칩니다. 그러자 몸이 담장 위까지 날아오릅니다.

그래 가서 꼭 성공해라. 우리 귀여운 삐아기야.’

소란스러운 소리에 고개를 든 어미 닭은 막내 삐아기가 드디어 유학을 결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꼭 성공할 것을 믿으며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푸드드득

요란한 날개 소리를 내며 막내 삐아기가 떨어진 곳은 담장 너머 주차장입니다. 놀란 막내 삐아기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핍니다.

삐아기야, 안녕

그때 맞은편에서 집 나온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인사를 합니다. 그러나 당황한 막내 삐아기는 눈앞에 문이 열린 창고가 보이자 그곳으로 훌쩍 날아서 들어갑니다.

창고 안에 쌓아 둔 크고 작은 종이 상자 사이로 들어간 막내 삐아기는 순식간에 맞닥뜨린 일로 놀란 심장이 콩닥콩닥 뜁니다.

철그럭, 부르르응

갑자기 문짝 닫는 소리가 들리더니 천둥소리를 울리며 창고가 움직입니다. 덜커덩거릴 때면 창고 안에 있는 종이 상자가 흔들리기도 합니다.

막내 삐아기가 날아 들어간 곳은 창고가 아니라 택배차 화물칸이었습니다. 차가 멈출 때마다 창고문짝이 열리고 상자가 줄어들면서 숨어있는 막내 삐아기의 모습이 드러나려고 합니다. 그때마다 점점 안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지만 택배기사님의 눈에 띄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이러다가는 잡히겠어. 다음에 멈추면 이곳을 빠져나가야겠어.’

막내 삐아기는 그 상자가 다 없어지기 전에 그곳을 탈출해야 할 위기를 느낍니다. 그래서 다음번에 멈추면 탈출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런데 택배기사님은 상자를 내리고는 문을 닫아버립니다. 한낮에도 어두운 차 안은 해거름이 되자 더욱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저씨 제가 잘못 들어왔어요. 살려주세요. 밖으로 나가게 해 주세요.”

바로 앞에 있는 종이 상자를 들어내자 자기의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막내 삐아기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마구 소리칩니다.

아니, 왠 닭이 여기 있지? 그놈 복달임하기 딱 좋겠다.”

막내 삐아기는 갑자기 눈앞이 깜깜합니다. 복날 없는 나라로 유학 가서 행복하게 잘 살라는 엄마의 유언이 생각납니다. 유학의 꿈이 무너지자 갑자기 엄마와 언니들이 너무나 보고 싶어집니다.

위이잉 탁, 달그락 착

막내 삐아기가 절망에 빠져 있는 사이에 차는 시골 소도읍의 아담한 골목집 앞에 멈춥니다. 차에서 내린 택배 기사님은 창고문짝을 열어 막내 삐아기를 움켜쥐고 집으로 들어가더니 큰 종이 상자 안에 넣어 둡니다.

삐아기야 안녕, 밤새 무서웠지.”

동이 트자 제일 먼저 찾아온 햇살이 밤새 잠을 설친 막내 삐아기를 포근하게 감싸줍니다. 알에서 세상에 깨어날 때 처음 만났던 햇살이었습니다. 막내 삐아기는 엄마 품속에 있을 때처럼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낯선 곳에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아빠, 닭이 파란색 알을 낳았어요. 청계예요.”

요한이는 퇴근하시는 아빠에게 파란색 알을 내밀면서 소중한 보물을 찾은 듯한 말투로 자랑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닭에게 달려간 요한이는 왕관 모양의 관과 턱에 수염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 특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물과 쌀을 넣어주고 학교에 갔는데 그것이 궁금하여 학원에 가는 길에 집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상자 안에 있는 조그맣고 귀여운 파란 알이 있는 것을 보자 너무나 기뻤습니다.

넌 이제 살았다. 우리와 한 식구가 될 수 있어.”

요한이는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그 닭이 청계라는 사실을 알고 들떠있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오시자 다짜고짜 닭을 키우자고 조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귀한 닭을 선물로 보내셨구나! 그래 마침 내일은 아빠가 쉬는 날

이니 함께 닭장을 만들자.”

꼬꼬 꼬, 꼬꼬 꼬꼬, 꼬꼬댁

마루 밑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막내 삐아기는 힘들었던 유학길을 떠올리며 감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월간<아동문학> 동화 당선(92), 계간<크리스찬문학> 동화 당선(93)
KBS-1TV 드라마 소재 공모 당선(85)
광주일보 월간 <예향> 창간 1주년 기념 <쓰고 싶은 이야기> 당선(86)
한·중·일 아동 동화교류 일본대회 광주·호남·제주지역 인솔 단장(2004)
(선집) 한·중 아동문학 선집 2(94), 호남 시인 106인 대표 시선 하(99)
화순군민의 상(교육문화부문) 수상(87)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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