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무리흰돌문학관

흰돌문학관/동화

훈이의 기도

루스드라 2022. 10. 30. 18:14

<22년 화순문학 원고/동화>

 

훈이의 기도

이성교

훈이는 자기도 모르는 힘의 소용돌이에 빠져듭니다. 마치 토네이도와 같은 바람에 휘말려 순식간에 내동댕이쳐진 느낌입니다. 그러나 그런 소용돌이를 겪으면서도 정신은 말똥말똥합니다.

어디선가 세상에서는 맡아보지 못했던 향기로운 냄새가 코끝을 스칩니다. 갑자기 훈훈한 기운이 감도는가 싶더니 기분이 상쾌해지면서 정신이 맑아집니다. 천근만근같이 무거운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집니다.

마음을 추스르고 둘러보니 자기가 있는 곳은 온통 밝고 빛난 빛으로 가득합니다. 눈을 들어보니 높고 높은 곳에는 거룩하신 분이 앉으실 듯한 의자가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찬란한 빛이 비치는데 안에서는 불덩어리와 같은 것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 빛은 얼마나 밝은지 눈을 똑바로 뜰 수가 없습니다. 고개를 드는 순간 바늘로 눈을 찌르는 것 같아서 저절로 눈이 감깁니다. 그런 찰나의 순간에 훈이의 눈에 비친 모습은 정신이 몽롱할 정도로 황홀했습니다. 그 빛은 높은 곳에 있는 거룩한 의자 가운데 불덩이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훈이는 눈 깜짝할 사이였지만 찬란한 빛 가운데 앉아 계신 분의 모습이 비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순간 그분은 하나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하나님의 소유라고 하신 성경 말씀이 생각납니다. 다시 보니 하나님이 앉으신 곳에서는 푸른빛과 붉은빛을 띤 보석이 가득하고 에메랄 드빛이 이글거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번쩍번쩍하는 빛과 천둥소리가 쉬지 않고 고동치듯 들려옵니다.

눈 깜빡하는 순간이었지만 잔상처럼 그 모습이 남아있습니다. 하나님이 앉으신 주위에는 일곱빛깔무지개가 감싸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물네 개의 의자가 둘러 있는데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쓴 스물네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 모습이 조금도 낯설지 않습니다. 분명 처음 보는 장면이지만 매우 낯이 익습니다. 그때 희미한 기억이 가물가물 떠오릅니다. 이어서 스물네 개의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장로님들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러면서 교회학교에서 선생님께 듣고 성경에서 읽었던 계시록 말씀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푸른빛의 고운 보석은 어린 양 예수의 거룩하심과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나타내 는 것이요 붉은빛의 보석은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은 것을 보 여 주며 하나님이 앉는 자리에 둘려진 무지개는 언약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서 저 아이의 오른 손목을 잘라라.”

갑자기 천둥소리 사이에서 음성이 울려 퍼집니다. 그 소리에 놀란 훈이는 황홀한 모습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이 하나님 보좌 앞에 엎드려 심판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그런 죄를 저지르지 않을게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저의 잘못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있어요.”

정신이 아득해진 훈이는 갑자기 오금이 저리고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그래서 아무 말이나 생각나는 대로 막 떠듭니다.

너는 네가 사는 세상에서 쓰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느냐?”

, 그것은 국어 시간에 배운 속담입니다.”

그래, 그러면 그 뜻도 알겠구나?”

, 세 살 때 길들어진 버릇은 여든이 되어도 고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세상 공부는 참 잘했구나. 그럼 너의 나이는 몇 살이냐?”

저는 열두 살로 초등학생입니다.”

열두 살이라

, 네 저는 초등학생입니다.”

하나님의 칭찬을 들은 훈이는 문득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시니 아직 어린 자기를 용서하시려나 보다 생각하고 긴장이 풀립니다. 그래서 묻지도 않으신 초등학생이라는 말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나도 너를 용서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만, 네 나이가 세 살을 넘었으니 참으로 안타깝구나. 너희 세상에서도 세 살 때 버릇은 고칠 수가 없다고 했지를 않느냐? 그러니 나도 너를 용서할 수가 없구나.”

하나님,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셨잖아요.”

그 말은 맞다. 그래서 지금 너를 심판하는 것이다.”

훈이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 하나님도 꼼짝을 못하시고 들어주신다는 전도사님의 말이 떠올라 어리광을 부립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세상에서 쓰는 말로 대꾸를 합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들을수록 아리소~옹 합니다.”

아니 이 녀석아, 무엇이 아리소~ 하단 말이냐?

훈이는 자기가 짐작한 대로 하나님 마음이 누그러지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따지듯이 묻습니다.

하나님, 그럼 저도 하나님께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그 녀석 참 재미있는 애로구나. 그래,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

, 감사합니다. 저와 같은 죄인을 구해주시려고 외아들인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 셨다고 하셨지요?”

그래, 그랬지.”

그리고 저희가 세상에서 지은 모든 죄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었다고 하셨지요?”

, 그랬지?”

그래서 그 피가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준다고도 하셨고요.”

그 녀석 참 똘똘하구나. 네 말이 옳다.”

그런데 왜 제 손목을 자르라고 하세요?”

훈이는 자신이 생각해도 대견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십자가 이야기가 술술 나옵니다. 똘똘하다는 칭찬까지 들으니 더욱 의기양양합니다. 그래서 얼굴이 붉어지면서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그것은 바로 너와 같이 머리로는 잘 알고 입으로는 앵무새같이 쫑알대면서 실천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너희들 세상 말로 하면 입만 살았다고 하지.”

하나님 아버지, 이제부터는 말씀하신 대로 꼭 지킬게요. 그리고 이번 일을 용서해 주시면 제 친구들에게도 오늘 하나님 만난 일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해서 꼭 믿게 할게요.”

하나님의 마음이 누그러지신 줄 알았던 훈이는 다시 다급해집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고 마구 내뱉습니다.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으냐? 이제까지 너와 같은 아이들을 수없이 만났다. 그 아이들도 내 앞에서는 하나같이 너와 똑같은 말을 했지? 그렇지만 돌아서는 순간 내 앞에서 한 약속은 잊어버리지.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도 하나님 을 만났다고 자기 자랑만 하면서 오히려 더 많은 죄를 짓고 있단다.”

저는 꼭 지킬게요. 저 한 번만 믿어주세요.”

내가 너의 말을 어떻게 믿는다는 말이냐? 이제 그런 거짓말에 속지 않을 것이다. 이 봐라 더는 저 아이의 변명을 듣고 싶지 않으니 손목을 내리쳐라.”

자 자 잠깐만이요. 하나님

이 녀석 참 말이 많은 아이로구나.”

그래, 더 할 말이 남았느냐?”

그럼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 테니 말해 보아라.”

다급해진 훈이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위기를 면하려고 할 말이 있다고는 했는데, 머리가 텅 빈 것같이 아무 생각도 나지를 않습니다. 그때 문득 교탁 앞에 서 계시는 담임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사자성어 하나가 퍼뜩 머리를 스칩니다.

하나님, ‘견물생심이라는 말을 아세요?”

참 그 녀석 끈질긴 아이로구나. 그래, 초등학생인 네가 그 말뜻을 안다는 말이냐? 어디 그 말의 뜻을 네 입으로 말해 보아라.”

감사합니다. ‘견물생심이라는 말은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긴다.’라는 뜻이라고 알 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이 어떻다는 것이냐?”

저희 담임선생님이 그러는데요. 물건을 훔치는 사람보다 물건을 잘 지키지 못한 사람이 더 나쁘다고 했어요. 그러니 제가 훔칠 수 있게 수박밭을 관리하지 못한 주 인이 더 나쁜 사람 아닌가요? 그리고 저는 억울 해요.”

아니 또 무엇이 억울하다는 것이냐?”

제가 수박을 따기는 했어도 하나님께서 한 입도 못 먹게 하셨잖아요?”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제가 수박을 따서 막 먹으려는데 벌떼들이 달려들어서 죽을 뻔했다고요. 저는 그 때 하나님께서 내리신 벌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똑같은 일로 두 번씩이나 벌을 내리시면 어떻게 해요?”

이 봐라, 더는 이 아이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당장 그 아이의 손목을 잘라라.”

훈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말을 잘 받아주시니 아빠라고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아빠에게 했던 말버릇이 나와버린 것입니다.

안 돼요. 하나님, 마지막으로 꼭 드릴 말씀이 있어요

아니, 또 할 말이 남았단 말이냐? 그래, 네가 사는 세상에도 재판장이 판결을 내리 기 전에 죄인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지 묻기는 하지. 어디 말해 보아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훈이는 여호와는 우리의 마음 안에 있는 생각까지도 아시는 분이라는 성경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이제는 살았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 있게 말을 합니다.

하나님, 방금 하신 말씀을 제가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일을 결정하시는 분이시니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하나님 말씀대로 잘 지키며 살겠습니다.”

그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사람들의 죽고 사는 문제를 내가 결정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것이다. 지금의 너와 같은 상태 에서는 나도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인 것이다.”

제가 사는 세상에는 법에도 눈물이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러시면 세상의 모 든 일을 다 아시고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시잖아요.”

하나님은 모든 일을 아시고 못 할 일이 없는 분으로 알고 있는 훈이는 갈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 말이나 생각나는 대로 막 떠듭니다.

거참 그 녀석, 이제는 막가자는 게로구나. 내가 설명을 해줄 것이니 잘 들어라. 용 서는 말이야, 네가 살아서 몸과 함께 있을 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몸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지.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머리로 생각하고, 손이나 발, 가슴으로 짓는 죄가 다 자신의 몸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지은 것이다. 그래서 안 된다는 것이야. 이제 알아듣겠느냐?”

, 잘 알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빌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 녀석아, 너는 지금 네 몸이 없어.”

? ……….”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보니 훈이의 눈에는 자신의 몸이 보이질 않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란 훈이는 더는 할 말을 잃고 맙니다. 그리고 바람 앞의 사시나무 잎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습니다. 그때 훈이의 옆을 지키고 있던 집행관이 칼을 높이 듭니다.

~~

훈이는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손목을 봅니다. 다행히 손목은 잠자기 전과 똑같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온몸은 마치 소낙비를 맞은 것처럼 땀이 흥건히 젖어있습니다.

어휴, 살았다.”

훈이는 반사적으로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주인 몰래 수박 서리했던 일을 떠올리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갯세마네 동산에서 피가 땀이 되어 흐르도록 간절히 기도하시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꿈속에서 마구 지껄였던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서 예수님을 전 하겠다.’라고 약속한 말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래서 온 마음과 뜻 힘을 다해 주님을 섬기고 전하겠다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프로필>

월간<아동문학> 동화 당선(92), 계간<크리스찬문학> 동화 당선(93)
KBS-1TV 드라마 소재 공모 당선(85)
광주일보 월간 <예향> 창간 1주년 기념 <쓰고 싶은 이야기> 당선(86)
··일 아동 동화교류 일본대회 호남·제주지역 인솔 단장(2004)
(작품집) ·중 아동문학 선집 2(94), 호남 시인 106인 대표 시선 하(99)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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